[마켓인사이트]KB금융, 1000억 덜 쓰고도 푸르덴셜생명 품은 비결은

입력 2020-04-14 16:35   수정 2020-04-14 17:17

≪이 기사는 04월14일(10:4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0일 새벽, KB금융지주 경영진들은 뜬 눈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푸르덴셜생명 인수자 선정을 눈앞에 뒀지만 최종 승자는 안갯속이었다. 환호성은 오전 9시에야 터졌다. 미국 푸르덴셜파이낸셜 이사회가 푸르덴셜생명을 KB금융에 매각하는 안을 승인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8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KB금융은 2012년부터 ING생명 등 굵직한 생보사 인수전마다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 인수는 절치부심 끝에 철저한 준비와 협업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KB금융은 최종 입찰가를 유력 경쟁자 보다 1000억원 가량을 덜 쓰고도 승자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악재 속에서 신뢰를 주는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경매 붙였는데도 오히려 금액 낮춘 KB

KB금융은 지난해 말 푸르덴셜생명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그룹 내 상대적으로 미약한 생보 비중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신한금융의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계기로 ‘리딩금융그룹’ 타이틀을 내준 것도 강한 동기로 작용했다.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면 신한금융의 지난해 실적(순이익)을 넘어설 수 있었다. KB금융은 JP모간의 자문을 받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월 예비입찰까지만 해도 매각 측은 3조원 정도의 가격을 원했다. 인수 후보도 몰려들었다. 본입찰을 앞두고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한국은행이 ‘빅 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했다. 유례없는 초저금리로 보험사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다. 금융 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사모펀드(PEF)의 자금 조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PEF들이 보수적으로 입찰에 나서면서 본입찰 가격은 2조원대 초반에 형성됐다. 당시 KB금융이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은 가격을 높이기 위해 경매호가식 입찰(프로그레시브 딜)을 채택했다. KB금융을 비롯해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 인수 의지가 강한 후보들에게 추가 입찰을 받았다. PEF들은 KB금융을 의식해 본입찰에서 가격을 높였다. KB금융은 반대로 행동했다. 본입찰 때보다 금액을 오히려 소폭 낮췄다. KB금융 관계자는 “무조건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은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회사 가치에 변동이 생긴 만큼 합리적으로 가격을 써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KB금융은 가격 경쟁에서는 밀렸다. 한 PEF는 KB금융이 제시한 가격(약 2조3000억원) 보다 1000억원 가량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이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KB금융이 더 낮은 가격을 써내고도 승자가 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한 측면이 컸다.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경기가 급변하면서 매각 측이 ‘빠른 거래 종결’로 무게추를 옮겼기 때문이다. 돈을 덜 받더라도 최대한 신속하고 뒤탈 없게 매각을 끝마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경기가 더 악화돼도 인수를 완주할 가능성이 큰 쪽은 재무적투자자(FI) 보다는 전략적투자자(SI)였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MBK파트너스는 오는 9월까지 겸업 금지조항(2년간 동종업종 기업인수 금지)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2018년 9월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신한금융에 매각할 때 맺은 내용이다.

매각 측은 마지막 입찰 과정을 마칠 때 본계약까지 마무리 짓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한 달 여간 실사 후 본계약을 체결하는 통상의 거래와 달랐다. 대신 본입찰 이후 1개월여 간 본실사 때 나갈 자료를 미리 내줬다. 이례적으로 입찰과 실사가 함께 이뤄졌다. IB업계 관계자는 “KB금융이 빠르게 거래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매각 측에 여러번 전달하면서 신뢰를 줬다”며 “매각 측의 요구에 발빠르게 화답하면서 승기를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거래에서는 생소한 '거래 시점-가격 고정(Locked-box)' 방식의 계약이 도입된 것도 양측이 ‘깔끔한’ 거래를 원했기 때문이다. 거래 종료 시점과 가격을 미리 못박아두는 형태다. 이 사이 가치 유출이 일어날 때만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통상 매도자가 가격을 올릴 때 요구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다”며 “기업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강한 공감대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푸르덴셜생명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사회 전폭적 지지도 한몫

거래를 완주한 데는 KB금융 경영진과 이사회 간 협업의 공도 컸다. ‘생보사 인수를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KB금융 경영진은 2018년부터 푸르덴셜생명에 관심을 뒀다. 매물로 나오기 전 찾아가 먼저 매각을 권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외부에는 ‘반드시 인수할 필요는 없다’며 ‘표정 관리’를 했다.

보험사 전 대표, 회계사, 법률가 출신 등이 포진한 이사회도 실무적인 조언으로 보탬을 줬다. 경영진에 권한을 위임하면서도 보험사 가치 평가와 가격 산정 등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냈다. 최종 입찰 가격도 이사회가 제시한 범위 내에서 결정됐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른바 가격 '지르기' 보다 긴밀한 물밑 협업 끝에 이뤄낸 성과여서 더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정소람/이상은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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