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얹어줘도 안 사"…유가 하루아침에 -37弗, 두 눈을 의심했다

입력 2020-04-21 17:31   수정 2020-04-22 01:56


미국산 유가가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수요 급감 △원유 저장시설 부족 △선물 만기일을 하루 앞둔 혼란 등이 겹쳐 일어난 미증유의 일이다.

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7.63달러에 마감됐다. 전 거래일(18.27달러)보다 55.90달러(305%) 폭락한 것이다. 한때 -40.32달러까지 내려갔다.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지 언론들은 “석유시장에서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원유 1배럴이 0보다 더 가치가 없어질 수 있느냐”고 보도했다.

선물 트레이더가 현물을 인수하는 상황

WTI 5월물 만기일은 21일이다. 통상 만기가 다가오면 선물시장의 트레이더들은 현물 수요가 있는 실수요자(정유사, 항공사 등)에 넘기고 차월물(6월물)로 이동한다.

그런데 5월물은 정유사 등 실수요자가 사라져버렸다. 미국 내 원유 소비가 30%가량 급감했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자 막대한 재고가 쌓이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한 주(4월 4~10일) 원유 재고는 사상 최대인 1925만 배럴 급증해 총 5억362만 배럴을 기록했다. 12주 연속 증가세다.

이러다 보니 선물을 처분하지 못한 트레이더는 WTI 인수 장소인 오클라호마주(州) 쿠싱에 가서 실물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이 원유를 받아와도 저장해둘 곳이 없다. EIA에 따르면 쿠싱의 원유 저장능력은 7600만 배럴에 달하지만 기록적인 속도로 차고 있다. 지난달 초 50%밖에 차지 않았지만 이달 70%, 다음달엔 가득 찰 것으로 관측됐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초대형유조선(VLCC)의 원유 적재량은 지난 17일 기준 1억4100만 배럴로 늘어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에 따라 팔거나 저장할 곳이 없는 트레이더들은 투매에 나섰다. -40달러란 기록적 유가가 발생한 배경이다. 마이클 매카시 CMC마켓 수석전략가는 로이터통신에 “시장을 지배하는 이슈는 미국 내 공급 과잉과 저장공간 부족”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많은 정유사와 파이프라인 회사가 원유 생산자에게 ‘웃돈을 얹어주는 경우에만’ 원유를 받아가겠다고 공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6월물도 14달러 선까지 떨어져

마이너스로 떨어진 건 5월물이다. 거래가 가장 많은 6월물 WTI 가격은 이날 18% 폭락했지만 배럴당 20달러 선을 지켰다. 하지만 급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미 동부시간 21일 아침 9시 기준으로 전 거래일보다 25% 이상 폭락한 배럴당 14~15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셰일업체 원가(35~50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6월물은 다음달 19일 만기를 맞는다. 그때라면 미국 곳곳에서 경제활동이 조금씩 재개될 수 있다. 어렵사리 합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의 하루 970만 배럴 감산도 다음달 1일 시작된다.

만약 수요 증가가 충분하지 않고, 감산량이 수요 감소분을 상쇄하지 못하면 6월물도 만기일이 다가올수록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글로벌원자재 리서치헤드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각국이 산유량을 실제 감산할 때까지 유가는 여전히 포화 속에 있을 것”이라며 “다음달 중순까지는 강한 변동성 장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선물 트레이더 일부는 6월물 거래를 아예 건너뛰고 7월물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위험이 높은 6월물 거래를 피한 것이다.

트럼프 “전략비축유로 매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지금은 원유를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최대 75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는 이달 초 30억달러 규모의 비축유 구매 방안을 경기부양책에 포함시키려 했지만 의회에서 보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수입에 대해 “(관세로 중단시키는 방안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사우디는 미국에 약 2500만 배럴을 수출했다. 2018년 12월 이후 최대량이다. 게다가 사우디 아람코는 감산합의 이전인 지난 4월 1일 대형 유조선 15척에 기름을 가득 실어 출항시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중 7척이 다음달 초 미국에 도착한다. 200만 배럴씩, 총 1400만 배럴이 미국에 들어온다. 한편 WSJ는 사우디가 5월 1일로 예정된 감산을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지난 12일 감산합의 때 이달 하루 1230만 배럴에 달했던 산유량을 850만 배럴까지 줄이기로 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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