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국제유가 마이너스인데 체감 못하는 국내 소비자들

입력 2020-04-22 18:15   수정 2020-04-23 00: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 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선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가 배럴당 -37.63달러로 마감했다. 선물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긴 하지만 5월에 받게 될 원유 1배럴을 사겠다고 계약하면 파는 사람이 38달러를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원유는 계속 생산되는데 수요가 급격히 위축돼 팔리지 않아서 생긴 기현상이다. 세계 원유 저장탱크와 파이프, 선박(배)에는 원유 재고가 가득 차 있다. 돈을 주고 팔라는 건 저장할 곳이 없는 원유의 저장비용을 대라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소비자들은 ‘마이너스 유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고 돈을 주지는 않는다는 건 소비자도 안다. 다만 국제 유가 급락세에 비해 기름값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을 품는다.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유회사로 향하고 있다. 정유 관련 기사의 댓글은 주로 험악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도 죽을 맛이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지난 1분기(1~3월)에 3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가파른 국제 유가 하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한 달 전 계약한 원유가 한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가격이 반토막 나 있다. 손해 보고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유 등을 생산하지만, 이들 제품 가격도 덩달아 급락했다. 주요 고객인 항공사들이 항공유 대금을 몇 달째 지급하지 못해도 정유사들은 감내해야 한다.

원유 선물 가격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현물시장에선 여전히 가격표가 있다. 올초 배럴당 60달러 선과 비교하면 3분의 1 토막이긴 하지만 여전히 배럴당 20달러 안팎이다.

1배럴은 42갤런으로, L로 환산하면 158.984L다. 1L의 원유값은 13센트(약 160원)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싼 주유소 찾기 웹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1일 국내 평균 휘발유값은 L당 1301.75원이다. 160원이 1301원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원유를 들어오면서 관세(5.6원)와 수입부과금(16원)을 낸다. 이를 정유회사가 휘발유로 정제해 주유소로 보내면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 △교육세 79.35원 △주행세 137.54원 등 745.89원의 세금이 다시 붙는다. 유통마진(126.75원) 등이 더해진 최종 가격엔 또 10%의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1301원인 1L의 휘발유에는 885.8원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 휘발유 판매가의 68%를 차지하는 세금이 요지부동이니 국제 유가가 떨어져도 소비자는 체감할 수가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가 급락은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급감했고, 앞으로도 한동안 수요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쪽에 베팅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지원을 놓고 정부는 석유품질검사비 납부 유예 등 본질과는 거리가 먼 대책만 내놓고 있다. 수요를 조금이라도 되살리려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일시적으로 깎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유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근간이다. 한국의 정제 능력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휘발유 항공유 경유 등을 생산해 절반가량을 수출한다. 원유는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로 자동차 전자 섬유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위기의 정유산업을 살릴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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