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헤게모니 잃는다"…美·中, 포스트 코로나 '패권 장악' 혈안

입력 2020-04-26 17:51   수정 2020-07-26 00:01


미국과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패권전쟁 2라운드’에 들어갔다. 패권전쟁 1라운드였던 무역전쟁을 휴전으로 봉합했던 미·중이 다시 신냉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수 모두 1위의 불명예를 얻은 미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반면 중국은 ‘의료 실크로드’를 내세워 미국의 빈틈을 파고드는 게 패권전쟁 2라운드의 특징이다. 영국 BBC는 미국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유럽발(發) 외국인 입국을 제한한 지난달 중순, 중국이 이탈리아에 의료진 300명을 파견한 사례를 거론하며 “미국이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한 상징적 순간”이라고 짚었다.


미국 ‘중국 때리기’ 재시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중국과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한 뒤 중국 비판을 자제해왔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 농산물 등을 대량 구매하기로 한 점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분위기였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을 180도 바꿔놨다. 미국은 다시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첫째, ‘중국 원죄론’이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 초기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바람에 전 세계가 피해를 봤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중국 공산당이 코로나19 발병을 세계보건기구(WHO)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인종주의를 부추긴다’라는 비난에 자제하고 있지만 한동안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미국 미주리주(州)는 21일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의 위험성과 전염력에 대해 전 세계에 거짓말을 했다”며 중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주 법원에 냈다.

둘째, ‘탈중국 드라이브’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지난 9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의 이전 비용을 세금 공제를 통해 100%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셋째, 중국에 우호적인 국제기구 공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WHO를 ‘중국 편’이라고 공격하며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게 대표적이다.

미 CNBC는 대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최악의 재난에 빠지면서 트럼프 캠프가 ‘중국 때리기’를 올해 대선 전략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가 18세 이상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1일 공개한 설문 결과를 보면 미국인 66%가 중국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관련 조사 시작 후 최고치다. 특히 ‘커지는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9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의료 실크로드’ 내세우는 중국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부각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 내 코로나19가 진정된 지난 3월부터 ‘의료 실크로드’ 구축을 내세워 광폭 외교를 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각국 정상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방역 성과와 함께 중국식 통치 모델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120여 개국과 화상회의를 열어 감염 확산 방지 대책 등을 조언했다.

인공호흡기,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물자 제공에도 적극적이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중국의 의료물자 수출액은 102억위안(약 1조7700억원)에 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 의료장비를 놓고 구매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방역·의료물자 지원과 대책 조언을 통해 코로나19 피해국을 ‘친중(親中) 국가’로 만들어 미·중 패권 경쟁의 판도를 흔들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고속철도, 특고압설비, 신에너지자동차·충전소 등 7대 신(新)인프라 투자에 50조위안(약 8710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미·중 모두 ‘반쪽 리더십’

미·중 양국이 각자 원하는 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리드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당장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며 체면을 구겼다. 25일(현지시간) 기준 확진자는 92만4576명, 사망자는 5만2782명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 아메리카대 교수는 미 ‘내셔널 인터레스트’지 기고에서 “세계 최대 경제와 최강 군대를 가진 나라가 사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준비를 못해 창피를 당하고 바이러스에 무릎 꿇은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만 내세우는 바람에 미국은 국제적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와 러시 도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병)이 미국에 또 다른 ‘수에즈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코로나19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1950년대 영국이 미국과 소련의 압력에 밀려 수에즈 운하에서 철군했던 것처럼 미국도 순식간에 헤게모니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주도하는 건 더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이 코로나19를 간신히 통제하긴 했지만, 투명성과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EU 정상들도 중국의 코로나19 대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중국의 성과가 한국 대만 같은 경쟁력 있는 민주주의는 물론 중국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큼 인상적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권위주의 모델이 선진국에서 수용될 가능성도 낮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12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각국은 중국의 유럽 내 전략기업 인수를 막기 위해 이들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주용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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