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국민이 뽑는 ‘K유니콘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두 가지 우려

입력 2020-04-23 16:36   수정 2020-04-23 21:17

≪이 기사는 04월22일(07:1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언젠가부터 정부의 경제 정책 중심에 '유니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뜻하는 단어다. 벤처 정책 주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지난해부터 유니콘 만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3월 제2벤처붐 확산전략을 내놓으며 2022년까지 유니콘 20개 탄생을 목표로 잡았던 중기부는 최근 이를 확대 개편한 'K-유니콘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목표 시점을 2021년으로 앞당겼다.

유망 스타트업들을 기업 가치에 따라 '아기 유니콘'과 예비 유니콘 등으로 구분하고 일종의 생애주기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아기 유니콘 선정 과정에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국민 심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정책자금이 절반을 책임지고 조성하는 벤처펀드의 규모도 기존 3조원에서 4조원으로 늘렸다. 작년 한 해 총 신규 벤처투자액이 약 4조30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정부가 벤처투자시장을 떠받치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벤처투자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간 기관투자자들의 벤처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안전판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다. 하지만 수 많은 벤처 위기를 거치며 잔뼈가 굵은 벤처캐피탈리스트들과 기관투자자들은 정부의 행보에 우려도 동시에 내비치고 있다. 과연 정부가 유니콘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벤처 생태계에 긍정적인지, 그리고 국민이 뽑는 유니콘이란 구호가 등장한 배경이 무엇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유니콘' 집착..."전형적 목적 전치 현상"

투자가들은 정부 정책이 “몇 년까지 몇 개의 유니콘 육성”이라는 구호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기업이 그 가능성을 인정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유니콘'이 그 자체로 목표가 되면서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통상 창업 극초반 아이디어만으로 투자 받는 시드 단계 및 시리즈A, 일정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 검증을 마치고 본격적인 상품화 단계 지원을 위해 이뤄지는 시리즈B, 궤도에 오른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과 인수합병(M&A), 상장(IPO)등을 통한 본격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이뤄지는 시리즈C 등으로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투자는 벤처캐피탈(VC), 증권사 등 금융사와 일부 거액 자산가 등 소수의 투자자들의 사모투자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벤처 지원을 위한 정책자금 운용을 담당하는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나 한국성장금융, 산업은행, 국민연금 등을 통해 시장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VC들이 운용하는 펀드 자금의 절반 가량을 정책 자금으로 책임지는 형식이다.

투자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과연 정부가 유니콘을 ‘만드는 것’이 벤처 투자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지다. 앞서 설명했듯 스타트업들에게 매겨지는 기업가치는 투자에 참여한, 많아야 10개가 되지 않는 소수 투자자가 기업에 부여한 가치다. 상장 후 주식 시장에서 평가되는 시장가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 출자자(LP) 기관 대표는 "기술적으로 1조원을 갖고 100억원씩 100개 기업에 총 1조원 가치로 투자하면 유니콘 100개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유니콘이 많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갯수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 정부는 숫자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내 벤처펀드의 전주(錢主)격인 정부가 유니콘 탄생에 목을 매니 기업가치는 실질과 관계 없이 치솟았다. 정책자금으로 만들어진 펀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투자에 나서면서 정부가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한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를 골라받는 풍경도 벌어졌다. 문제는 한껏 높아진 가치를 최종 평가하는 회수 시장에선 이를 ‘거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공식 집계한 국내 유니콘은 현재까지 11곳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IPO나 M&A 등 어떤 방식으로든 투자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업은 지난해 독일계 음식배달 서비스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7000억원에 매각된 배달의 민족 정도다. 2호 유니콘 옐로모바일은 2014년 마지막으로 기업가치를 평가 받았을 때 가치가 40억달러(4조8000억원)에 이르렀지만 2017년 이후 감사 의견 거절이 이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현재는 사실상 공중 분해됐다. 쿠팡, 위메프 등 유통 기업들은 온라인 쇼핑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너무 커져버린 몸집에 매각도 상장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에 대해 A벤처캐피탈 대표는 "한국 정도 시장 규모에서 조단위 유니콘은 상장도 매각도 쉽지 않다"며 "지금 한국 벤처투자 시장은 투자는 있지만 회수는 없는 전형적인 소화불량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유니콘 만들기를 장려하면서 정작 대기업이나 해외 투자자 등 유니콘을 받아줄 투자자들에 대해선 놀라우리만치 적대적이다"며 "독일 기업에 매각된 후 수수료 인상을 시도했다 정부·정치권으로부터 매국 기업 취급을 받고 있는 배달의 민족을 보라"고 말했다.

유니콘의 탄생 과정에서도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말 11번째 유니콘으로 중기부가 깜짝 발표한 바이오시밀러 업체 에이프로젠은 정부 발표 6개월 전 한 VC의 전환사채(CB) 투자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1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 받았던 사실이 중기부의 전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지며 뒤늦게 유니콘이 됐다. B벤처캐피탈 심사역은 "정책 자금을 굴리는 LP들에게 어떤 투자 기업이 유니콘이 될지를 보고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전형적인 목적 전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국민이 뽑는 아기 유니콘?..."되려 벤처생태계 교란할 것"

최근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이 만드는 유니콘' 구호를 바라보는 VC들과 벤처기업들의 심경도 복잡하다. 중기부는 K-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국민'이 키우는 유니콘임을 강조했다. 기업가치 1000억원 이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기 유니콘' 200개와 향후 1조원 이상의 유니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1조원 이하의 '예비 유니콘'을 선정·지원하는 과정에 국민이 직접 투표, 심사를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국민 심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여기에 선정기업이 추후 성공하면, 후배 창업·벤처기업인 양성 등 사회에 성과물을 환원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 지표를 최종심사 시 중점 평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경제의 신성장동력이란 일반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원’보다는 ‘투자’로 여겨지던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에 비로소 ‘청구서’가 따라 붙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금으로 조성된 정책자금으로 벤처투자 시장이 돌아가고, 스타트업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만큼 거기에 걸맞는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벤처업계 종사자들과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정부의 이같은 정책을 철저히 '성장'과 '수익'을 목표로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시장의 논리에 역행하는 조치로 보고 있다. 초기 기업을 육성하는 C엑셀러레이터 관계자는 "스타트업 투자금의 원천을 따져보면 국민의 세금이 상당 부분 섞여 있기에 창업자들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투명하게 경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국민 추천을 받아야 한다거나 일정 단계에 도달한 뒤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것이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되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벤처투자 시장에 몸담고 있는 D벤처캐피탈 대표 역시 "남의 돈을 투자 받거나 위탁 받아 운용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죄는 손해를 보는 것"이라며 "착한 기업이 곧 좋은 기업인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느닷없이 '국민'을 벤처투자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내건 배경엔 타다와 배달의 민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 평가다. 승차거부, 말걸기가 없는 승차 서비스로 단기간에 17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끌어모으며 예비 유니콘으로 주목 받았던 타다는 택시 업계의 반발과 표를 의식한 정부, 정치권의 규제 속에 사업 자체를 접으며 사라졌다. 배달의 민족은 작년 말 독일 기업에 매각된 후 최근 수익력 강화를 위해 수수료를 올렸다 정치권으로부터 ‘독과점 기업의 횡포’라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수수료 개편을 포기했다.

구체적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두 기업의 성장 과정엔 정책 자금을 위탁 운용한 VC들이 있었다. 정부 입장에선 국민 세금을 바탕으로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정부의 보호 대상인 영세 자영업자나, 표심을 좌우하는 40~60대 중장년층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새삼 인지하게 된 것이다. E스타트업 대표는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해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인공지능(AI), 로보틱스, 플랫폼 등 소위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대체로 일자리를 줄이고 부의 불평등은 심화시키는 특성을 갖는다”며 “혁신이 내포한 딜레마”라고 말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최근 한 방송에서 “배달앱의 편리함 덕분에 소상공인 주문이 늘어난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세상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소상공인 생계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정부가 추진하는 유니콘 육성 정책의 큰 틀은 지켜나가되 벤처투자의 본질과 한국 시장의 특성을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 녹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유니콘 개념 재설정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 한국 시장의 규모와 투자 회수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 목표가 재설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되레 벤처생태계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F벤처캐피탈 임원은 "유망 벤처를 정부가 일일이 선정하고 국민이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시장 논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벤처기업과 이들에 투자하는 벤처투자가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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