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의 '뉴노멀'

입력 2020-05-17 18:40   수정 2020-05-18 00:17

세계는 아직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반년 만에 45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31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것도 최강국인 미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이미 베트남전쟁 때보다 훨씬 많은 9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진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2, 3차 대유행’부터 ‘대대공황(greater depression) 도래’와 ‘현대문명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전대미문의 비관적인 가설이 쏟아지고 있다. 백신 개발이 늦어질수록 공포 바이러스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2008년의 금융위기를 능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6월 말까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 무려 9조달러에 이르는 산출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6배, 독일과 일본의 GDP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규모라니, 얼마나 많은 인류가 큰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불과 6주 만에 무려 3000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세계적인 규범으로 정착된 글로벌 공급망을 와해시키고, 보건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지구 전체를 전근대적인 봉쇄체제로 환원시켜 버렸다. 21세기에 마스크와 면봉 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간에 낯 뜨거운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악몽을 딛고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다고 해도 세계 경제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움직이게 될 것 같다. 먼저 개방과 협력, 글로벌 공급망으로 대표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규범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중 간 갈등으로 자유무역의 근간이 큰 도전을 받아 왔지만,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처럼 “관(棺)에 들어간 세계화에 코로나가 대못”을 박고 있는 셈이다. 특히 미국이 앞장서 탈(脫)세계화를 주도하면서 무역장벽을 높이고 투자와 공급망 등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이 더욱 확산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존의 글로벌 전략을 재평가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보완해 안정과 효율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에서는 미국보다 세계화에 더 적극적인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협력의 패러다임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세계 경제의 ‘일본화(Japanification)’ 추세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저물가와 경기 침체를 동반하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 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의 장기 침체에서 탈피하지 못한 일본 경제의 악몽이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유럽 경제는 벌써 일본화가 시작됐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조기에 퇴치하지 못한다면 미국마저도 이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질 것이다. 현재 IMF와 구제금융을 협의하는 국가가 90여 개에 달한다고 하지 않는가. ‘닥터 둠(Dr. Doom)’이라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I자형과 L자형 침체가 모두 이런 가설에서 비롯된다. 세계 경제의 일본화 공포는 코로나 이후 우리가 직면하게 될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다.

막대한 재정 지출을 바탕으로 정부가 모든 부문에서 ‘큰형님(big brother)’으로 등장하는 것도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대량 실업과 유동성 위기가 확산할수록 정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큰형님’이 성공한 역사는 보기 드물고, 오히려 남미와 유럽, 사회주의권 등 실패로 전락한 사례만 수두룩하다. 정부가 포퓰리즘과 결합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민간 부문의 자발적인 경제 활동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이 실패하면 ‘보이는 손’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막강한 힘을 가질수록 더욱 절제력을 발휘해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 이후 직면하게 될 세계 경제의 새로운 규범은 한국 경제로서는 모두 감당하기 힘겨운 과제다. 국가 비전과 전략을 명확히 세우고 계층과 이념, 세대를 넘어 온 나라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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