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산 TV의 힘

입력 2020-05-20 17:46   수정 2020-05-21 00:21

“남이 미처 안 한 걸 선택하라. 국민생활에 없어선 안 될 것부터 시작하라.”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말이다. 이런 경영철학을 가진 그는 금성사 설립 이듬해인 1959년 국산 라디오를 개발했고, 1966년 국산 TV를 생산했다. 당시 흑백TV 가격은 6만8000원으로 쌀 27가마 값이었다. 그런데도 공개추첨에서 당첨된 사람만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삼성전자는 1970년 흑백TV 시장에 뛰어들었다. 1975년 예열 없이 화면을 바로 볼 수 있는 신제품 ‘이코노 TV’로 시장을 넓힌 뒤, 1976년 컬러TV 개발에 먼저 성공했다. 다음해 LG전자도 컬러TV 생산에 나섰다. 두 회사는 1980년 국내에 컬러TV 방송이 허용될 때까지 전량을 수출했다.

국내 TV시장 판도가 달라진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LG전자가 1987년과 1989년 두 차례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는 사이 삼성전자가 앞서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3세대 TV 시장을 먼저 연 것도 삼성전자였다. 이에 뒤질세라 LG전자는 64인치 한국형 디지털 TV를 최초로 선보이며 맞불을 놓았다.

양사의 ‘TV 전쟁’은 화면 크기와 두께, 화질 경쟁으로 이어졌다. 이 덕분에 한국 TV산업은 디지털 흐름을 선도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소니 신화’를 앞세운 일본 기업들을 제쳤다.

올 1분기에는 전 세계 TV 매출의 51.1%를 삼성과 LG가 차지했다. 경쟁국인 중국(21.2%)과 일본(14.3%)을 합친 것보다 많다. 출하량으로도 시장점유율 36.1%로 단연 1위다. 지구촌에서 판매된 TV 석 대 중 한 대가 우리 제품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의 약진을 ‘프리미엄’과 ‘대형 TV 선점 효과’ 덕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500달러(약 307만원) 이상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 비중은 68%에 달했다. 75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에서는 72.5%까지 치솟았다.

온 국민이 보릿고개로 신음하던 1960~1970년대, 동네에 몇 대 없는 흑백TV 앞에 모여앉아 울고 웃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미국과 일본이 휩쓸던 TV 시장을 후발주자인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었던 저력은 혁신을 거듭한 기술력에서 나왔다. 전자산업 불모지에서 출발한 한국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곧 세계 TV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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