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중세 러시아 휘저은 칭기즈칸 후예들

입력 2020-06-11 18:27   수정 2020-06-12 03:05


킵차크 칸국, 금장한국(金帳汗國), 주치 울루스(주치의 땅)…. 모두 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세기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일대다. 몽골제국의 대영토 중 중국 대륙은 원(元)나라, 페르시아 지역은 일 칸국이라는 단일 명칭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몽골제국 역사를 연구해 온 미국 사학자 찰스 핼퍼린이 쓴 《킵차크 칸국》은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세운 킵차크 칸국(1240~1480)이 러시아 지역을 지배하며 러시아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중세 러시아와 몽골 간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9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중국이나 페르시아와 달리 몽골제국의 러시아 일대 통치 역사가 덜 알려진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몽골족이 러시아에서 상주하며 통치하지 않았다는 것과 러시아인들이 ‘정복당한 역사’에 대해 기록 대신 은폐를 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와 ‘타타르의 멍에’로 표현되는 러시아의 중세 역사 기록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역사가들이 몽골제국 통치 시기에 러시아 사회가 생기를 잃고, 문화적·경제적 침체에 빠졌다고 서술한 것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몽골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와 서로 끼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며 “러시아 중심주의 관점에만 물들어선 곤란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먼저 러시아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 민족과 종교적 접경지대에 속했음을 지적한다. 킵차크 칸국은 지배계층인 몽골족과 피지배계층인 슬라브족, 튀르크족 등이 뒤섞였다. 종교도 몽골족 유목민의 토착종교 텡그리와 유럽의 기독교, 중동계의 이슬람교가 공존했다. 문화적으로는 비잔티움 및 서구와 연결돼 있고, 정치적으로는 이교도와 훗날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동방과 연계돼 있었다. 동서방 모두에 상당히 이질적이고 변칙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이 같은 다양성은 몽골족과 슬라브족 사이에 묘한 관계를 낳았다. 몽골제국과 러시아는 비록 긴장된 관계였지만 항상 적대적이진 않았다. 몽골제국의 제도를 러시아에서 상당 부분 차용할 때도 많았다.

몽골제국이 러시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분야는 경제였다. 유목 생활을 한 몽골제국은 국제교역을 중시했다. 킵차크 칸국은 동·서방 사이에서 무역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몽골제국에선 자체 관료 ‘바스카크’를 통해 피지배 지역으로부터 세금을 걷으며 행정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훗날 모스크바 공국을 포함한 러시아 내 여러 공국이 조세 제도로 차용했다. 이 책은 러시아 공작과 타타르족의 통혼, 러시아 주요 공국들이 몽골제국으로부터 받은 군사 체계와 각종 무기 시스템, 전제정치 제도 등도 적시한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러시아 일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역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의 문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후대 역사가들이 러시아의 동기와 능력의 관점으로만 몽골 시기의 사건들을 해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몽골제국이 중세 러시아에 끼친 영향에 대해 편견 없는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러시아의 공작들이 킵차크 칸국의 칸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시대의 장막을 걷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끄러운 역사도 기록돼야 한다는 뜻이다.

킵차크 한국이든 금장한국이든 모두 후세의 역사가들이 지은 이름이다. 당대에 어떻게 불렸는지도 모르는 땅의 역사를 다시 펼치려면 무엇이 선행돼야 할까. 독자들에게 ‘기록의 편견’에 대한 무거운 돌직구를 던지는 책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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