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만지고 소리를 보다…공감각 깨우는 新경험

입력 2020-06-28 17:02   수정 2020-06-29 00:16


푸른 빛의 수많은 줄이 캄캄한 전시장 천장과 바닥을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중 하나를 잡아당기자 빛이 사라지면서 전시장 한쪽에 놓인 피아노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다른 줄을 당기자 다른 멜로디가 연주된다. 프랑스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아티스트그룹인 랩212의 설치 작품 ‘포티(Porte)’다.

포티는 프랑스어로 ‘악보’라는 뜻. 빛이 나는 줄을 관객이 만지면 동작센서가 작동해 정보가 컴퓨터로 전해지고, 컴퓨터는 미디(MIDI) 음표를 자동 연주 장치가 설치된 피아노로 보내 프랑스 작곡가 샤플리에 푸가 작곡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관객이 줄을 만지면 악보에 음표가 더해지는 셈. 각각의 줄은 한두 개의 짧은 멜로디를 담고 있어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여러 줄을 당기면 자신만의 작곡을 할 수 있다.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은 공감각형 전시다. 세계적인 작가 13명(팀)의 소리 설치, 관객 참여 퍼포먼스,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light art), 비주얼 뮤직 등 22점을 벽과 커튼으로 분리된 독립공간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파란색 조명이 가득한 계단 공간에서 맑고 세밀한 소리들을 먼저 만나게 된다. 계단 양쪽 벽과 계단 아래 벽에 꽃줄기처럼 설치돼 있는 수백 개의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다. 스피커마다 나오는 소리가 다른데 전체로는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캐나다의 작곡가 겸 설치 작가 로빈 미나드의 ‘클라이미트 체인지(Climate Change·Blue)’다. 조그만 원형 스피커를 성장하는 식물의 형상으로 벽에 심어 명상하듯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한다. 스피커마다 귀를 대 보는 관객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공간음향의 대가인 미나드는 “고요함이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미세하고 작은 소리조차 명확하게 들리는 음향적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소리가 없는 상태는 ‘죽은 공간’이지만 ‘고요한 공간’은 활동적인 공간이자 고요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미니멀한 소리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크리스틴 오펜하임의 1993년 작품 ‘세일 온 세일러(Sail on Sailor)’의 방에는 바닥 한가운데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뿐이다. 미국 록그룹 비치보이스가 부른 동명의 노래 후렴구를 차용한 작품으로, ‘항해를 계속하라’는 가사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메아리처럼 울리며 최면을 걸듯 정서와 감정을 자극한다.

영상과 소리, 퍼포먼스와 텍스트를 결합해 특정 상황을 재현하는 현대 미술가 박보나는 가상의 섬 ‘코타키나블루’에서 들릴 법한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산책하는 소리 등을 벽에 설치한 스피커로 들려주고 반대편 벽에서 그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 풍경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실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방에서 대야와 빨래판 같은 생활용품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관객들은 묘한 당혹감과 허탈감에 빠진다.

로버트 헨케의 레이저 설치 작품 ‘프레자일 테리토리즈(Fragile Territories)’는 첨단 레이저 시스템을 이용해 벽에 기하학적 패턴의 선들을 그려낸다. 관객들은 섬광처럼 빛나는 레이저의 움직임과 소리가 생성하는 무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한다.

독일의 창작집단 모놈은 10년 이상의 연구와 100여 명의 아티스트가 협업해 설계한 4D 사운드의 홀로그램 기술로 제작한 ‘로스 스페이시즈 레인포레스트 베리에이션즈(Lost Spaces: Rainforest Variations)’로 극사실적인 청각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어둑한 전시장에 놓인 평상에 앉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내 열대우림의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새의 지저귐과 숲의 소리들이 들리다가 곧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들리고, 이내 천둥·번개와 함께 굵어지는 빗소리, 급류 소리로 바뀌면서 숲속 세계로 몰입하게 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몰입도가 더 세진다.

전시를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기술에 예술을 입혀 동화적 감성을 자극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바스쿠와 클루그의 ‘브레스 오브 라이트(Breath of Light)’다. 체코의 유서 깊은 유리공예 브랜드 프레시오사의 클래식한 샹들리에에 설치된 세 군데 센서에 숨을 불어넣으면 숨결이 닿는 시간의 길이에 따라 투명한 조명들이 차례로 빛을 발하며 유려한 소리를 내보낸다. 원래 관객참여형 설치 작품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시장 안내요원들이 센서 시범을 보여준다.

지난 5월 19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사태로 시간당 관람객을 제한하는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 중인데도 관람객이 꽤 많다. 주중에는 하루 200~300명, 주말에는 400~500명이 찾아온다고 디뮤지엄 관계자는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 2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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