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구급차 막는 '어깃장 사회'

입력 2020-07-05 18:10   수정 2020-07-06 00:07

구급차(救急車, ambulance)는 원래 ‘걸어 다니는(ambl) 야전병원’을 뜻했다. 시초는 나폴레옹 시절인 18세기 말, 프랑스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가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구급 마차’다. 이 구급 마차가 ‘병사들의 구세주’로 각광받으면서 점차 민간으로 확산됐다. 자동차로 환자를 이송하는 체계는 1899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는 1938년에 첫 구급차가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119구급차 시대가 열린 것은 1982년부터다. 수요 급증에 따라 1994년엔 사설 구급차도 생겼다. 지금의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인물은 4대째 의료선교로 헌신 중인 인요한 연세세브란스병원 의사다. 그는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택시 이동 중 운명한 일을 계기로 의료기능을 갖춘 구급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구급차의 생명은 응급처치와 신속한 이송이다. 구급차 앞덮개에 영어 ‘AMBULANCE’나 한글 ‘119 구급대’ 글씨를 거울에 비친 것처럼 거꾸로 적은 것은 앞 차가 백미러로 알아보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미국에서는 구급차 사이렌이 들리면 모든 차가 길가에 정차한다. 양보하지 않으면 주변 차량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거액의 과태료도 문다. 싱가포르 등에선 살인예비음모 등 중범죄로 다룬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구급차 양보에 인색한 편이다. 응급 상황이 맞느냐고 의심하면서 시비를 벌인다든지 차를 막고 폭언하는 경우도 많다. 접촉사고 후 연락처를 교환하고 이동하려는데 사고처리를 강요하는 바람에 환자가 목숨을 잃은 사례까지 있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생겨 청와대 국민청원에 엄벌을 요구한 사람이 사흘 새 50만 명을 넘었다.

119구급대는 지난해에만 294만 번 출동했다.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옮긴 인원은 186만 명. 하루 평균 8053건 출동해 5095명을 이송했으니 국민 28명당 1명이 이용한 셈이다. 심정지 등 4대 중증응급환자 이송은 해마다 늘고 있다. 모두가 촌각을 다투는 환자다.

이런 환자를 태운 구급차 앞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열어주는 미담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나 몰라라 하거나 길을 막고 어깃장을 부리는 운전자까지 있다. 시절이 어수선하면 심성도 강퍅해진다고 했던가. 합리적인 이성보다 분노와 생떼를 앞세우는 ‘어깃장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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