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자동차와 배터리를 빌릴 수 있다면

입력 2020-07-23 08:00  


 -차체도 빌리고 배터리도 빌린다면

 마트에서 로봇 장난감을 처음 사면 건전지가 들어 있다. 끼우면 불빛이 번쩍이기도 하며 소리도 낸다. 그러다 건전지 전력이 소진되면 새로 구입해 교체한 후 다시 장난감을 사용한다. 로봇의 하드웨어 문제만 없다면 1회용 건전지는 얼마든지 갈아 끼우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엄밀하게는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차체와 배터리를 분리해 교체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방식은 전기차 초창기부터 이미 등장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지난 2006년 미국에서 배터리 교체를 주력 비즈니스로 내세우며 시작된 '배터플레이스'다. 이들은 2008년 이스라엘에서 전기차 리프 확산에 나서려는 닛산과 손잡고 BEV의 확장성을 검증했다. 곳곳에 많은 충전 인프라를 갖추기보다 몇몇의 장소에 배터리 교체 시설을 설치하고 빠르게 배터리만 바꿔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3년 결국 배터플레이스는 파산했다. 이유는 기대했던 만큼 BEV 시장이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알려진 사실일 뿐 배터플레이스가 진짜 파산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닛산은 이슬라엘에 전기차 6,000대를 판매키로 했지만 유가 하락이 이어지자 소비자들의 관심은 한순간 내연기관으로 다시 돌아섰다. 게다가 배터리팩(Battery Pack)을 직접 구매한 뒤 전력을 충전, 팩을 대여해주는 배터플레이스로선 고가의 고성능 팩을 많이 준비했던 만큼 적자는 불가피했던 셈이다. 일부에선 당시 닛산이 목표인 6,000대의 EV를 판매했어도 배터플레이스의 고가 배터리팩 고수 전략이 유지되는 한 수익은 어려웠을 것으로 회상하기도 한다.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배터리 전기차(BEV)의 상황은 분명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저유가와 무관하게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이 각 나라의 내연기관 포기를 유도하는 중이다. 쉽게 보면 기름 가격의 변동성이 이동 수단의 주력 에너지 선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됐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BEV가 유가와 무관하게 확대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BEV의 가치성이 편의성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하버드대학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유명한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전기차를 언급한 적이 있다. 초창기 시장은 기능적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만큼 편의적 가치가 우선이라고 말이다. 즉 소비자 스스로 '전기차를 탈수록 환경적 가치가 높아져!'라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까지 관련 기업은 초단기렌터카 등에 전기차를 많이 활용해 사용자 경험을 늘리고 충전 인프라를 확장해 이용의 편리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등장하는 BEV는 충전 속도가 20분 내외로 급격히 짧아졌고 주행거리도 400㎞를 훌쩍 넘긴다. 게다가 충전기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몇 년 사이 편의성이 대폭 향상됐고 이제는 소비자 또한 가치적 인식으로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BEV의 배터리 교체 방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교체 방식이 언급되는 용도는 당연히 영업용 이동 시장이다. 이미 일본과 중국 등에선 교체식이 고개를 들면서 버스 및 택시, 렌터카, 스쿠터 등에 일부 적용되는 중이다. 이 가운데 버스는 국내에서도 제주도에서 교체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버스는 기본적으로 교체식보다 충전식이 선호되고 있다. 정해진 노선을 오가는 데다 기점에 들어오면 운전자 휴식 시간에 충분히 충전이 가능해서다.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점에서 초창기는 충전 시간이 오래 걸려 교체식이 시선을 끌었지만 최근 급속 충전 기술의 발전이 시간을 줄이자 고가의 교체식 충전 시설은 점차 외면 받고 있다. 

 하지만 택시는 교체식 도입이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는 교통 분야로 여겨진다. 특히 국내에선 철저하게 이용자와 사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국내 택시 사업의 원가는 '차 가격+운전자 비용+연료비+보험료' 등으로 고정돼 있다. 여기서 인위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차 가격과 연료비다. 이에 따라 택시 사업자는 언제나 제조사로부터 공급받는 자동차 가격을 깎으려 하고 연료비 절감을 위해 교육은 물론 다양한 방안을 강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택시 사업자들이 보조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비싼 전기차를 조금씩 선택하는 이유는 연료비 측면에서 LPG 대비 전기료가 아직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교체식이 주목받는 것은 운행 원가를 낮추는 것이 택시 이용자들이 부담하는 요금의 인상 압력을 완화시키는 방안이 될 수도 있어서다. 현재 택시 요금은 지자체별로 자치단체장이 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국내 택시 요금은 소득 수준 대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이에 따라 요금 인상 압박이 해마다 높아지는 구조임에도 정부는 국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택시 연료로 사용되는 LPG에 세금을 면제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을 해왔다. 쉽게 보면 선거로 운명이 결정되는 자치단체장에게 택시요금 인상은 악재이지만 운행 원가가 매년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운전직 근로자의 소득도 보장해야 하고 자동차회사의 공급 가격도 인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의 배터리팩 교체식 도입은 기본적으로 돈 문제를 해결하는 묘수로 떠오를 수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택시 사업자는 배터리팩을 제외한 이동 수단을 구입할 수도 있고 빌릴 수도 있다. 이 경우 당연히 배터리팩 가격이 배제돼 있으니 이동 수단의 운용 가격은 크게 낮아지기 마련이다. 이때 필요한 배터리팩은 빌려 사용하되 요금은 사용한 전력량만큼 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자치단체는 교체식 배터리팩에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생산-사용-재활용 및 폐기' 등의 관리도 쉬워진다. 더불어 교체식이라는 점에서 과격 운전에 따른 고정형 배터리팩의 수명 단축도 방지할 수 있고 이는 곧 사용 연한의 연장으로 연결된다. 이 방식으로 운행 원가를 낮추면 요금 인상의 압박도 줄어 이용자 부담도 덜어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방식을 흔히 서비스로서의 배터리,즉 '바스(BaaS, Battery as a Service)'로 부른다. 

 물론 전제 조건은 있다. 교체 가능한 동일 차종이 많을수록 배터리팩 이용 가격도 저렴해지는 등 효용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배터리팩 교체 사업자가 수익을 내기 위해선 저가의 배터리팩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 또한 소모품이고 사용 용도가 택시라는 점은 교체식 도입 필요성을 높이는 조건이다. 택시 배터리팩이 교체식으로 활용될 때 떨어지는 배터리와 에너지 비용이 택시 사업자와 근로자는 물론 자치단체, 그리고 지역 주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대기질 개선이 뒤따라오는 만큼 교체식에 대한 관심은 늘어날 것 같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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