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보다 더 오르는 전셋값…정부 믿던 무주택자 등골 휜다

입력 2020-07-19 09:36   수정 2020-07-19 15:13


서울 고덕동에 살고 있는 전업주부 김모씨는 남편과 말을 안한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집 얘기만 나오면 싸움으로 번져서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에 입주초기부터 전세(전용 59㎡)로 살았던 김 씨 가족은 4억3000만원으로 계약을 작년 5월에 갱신했다. 계약을 갱신하기 전부터 김씨는 남편에게 집을 사자고 재촉했지만, 부동산 비관론자인 남편은 듣질 않았다. 상일동 고덕동 일대에 아파트들에서 다주택자 물량이나 어려운 집주인들의 물량이 나오기 때문에 집값과 전셋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최근 동네 전셋값 상황을 지켜보면서 김 씨는 할 말을 잃었다. 지난 5월에 전세값이 5억원을 넘는가 싶더니 이제는 6억5000만원까지 치솟아서다. 지난해 입주한 그라시움 역시 6억원을 웃돌고 있다. 김 씨는 "'폭락 유튜버 믿다가 폭망했다'라는 말이 내 얘기가 됐다"며 "애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남편은 '공부 잘하는 애들은 어디서든 잘한다'며 3기 신도시를 노리고 하남으로 가자고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주택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전세'가 흔들리고 있다. 시장에서 매물은 사라지고 전셋값은 오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에 무주택자들은 주거불안을 호소하고 있지만, 구제방법은 없다. 전셋값은 도미노처럼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를 믿고 점수를 쌓아왔던 무주택자들은 난민처럼 떠돌고 있다. 이들이 몰려가는 곳마다 전셋값은 급등중이다. 오를대로 올라버린 집값과 막혀버린 대출에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집주인들도 고민에 빠졌다. 각종 세금이 오르는 것을 비롯해 임대차 3법 시행 등을 놓고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집을 처분이나 증여를 할지, 직접 처분해야 할지 등이다. 세입자를 바꿔도 전셋값을 못올릴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미리미리 올려야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다. 이처럼 고민이 깊어지는 동안 시장에 매물은 급격히 잠기고 있다. 나와있는 매물은 '계약하려면 해라'라는 배짱 매물들도 많다. <한경닷컴>은 최근 가중되고 있는 전세난 현황을 집중 조명했다.
"폭락 유튜버 믿다가 폭망했다" 무주택자들 '눈물'
19일 한경닷컴이 한국감정원 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올해들어 최근(7월13일 기준) 서울 25개구 중 전셋값이 집값 보다 더 오른 곳은 21곳이었다. 집값이 더 오른 지역구는 중랑, 노원, 구로, 관악구 등 4곳 뿐이었다. 집값은 하락했는데 전셋값이 오른 지역도 있다. 강남 3구가 대표적이다. 올들어 강남구와 서초구의 집값은 각각 2.02%, 2.06%씩 하락했지만, 전셋값은 2.72%, 2.72%씩 상승했다. 송파구 역시 집값이 1.12% 하락할 동안 전셋값은 2.28% 올랐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3% 오르며 55주 연속 상승했다. 전국적으로 전셋값은 상승폭을 넓히고 있다. 시·도별로는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 정부가 집값 잡기에 나선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지역에서 되레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 강동구는 청약 대기 수요가 꾸준한 가운데 고덕동과 강일동 신축 아파트 위주로 전셋값이 치솟으며 전주 대비 0.3% 올랐다. 송파구는 잠실동 재건축과 문정동·송파동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면서 0.26% 상승했고, 강남구는 대치동과 역삼동이 전셋값 상승을 견인하며 0.24% 올랐다. 서초구 역시 재건축 등 정비사업 이주 영향이 있는 잠원동과 반포동·서초동 위주로 0.21% 상승했다.

김 씨가 전셋값 추이를 봤던 고덕동 그라시움(4932가구)은 전세가가 널뛰기 장세를 보이더니 최근에는 확연한 오름세로 자리잡았다. 전용 84㎡ 기준으로 지난해 입주초기만 하더라도 물량이 많다보니 4억원 중반대까지 전셋값이 떨어졌다. 최근에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7억90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고, 호가는 10억원까지 오른 상태다.

고덕동 A공인중개사는 "주변 입주 단지 많지만 집주인들이 대부분 직접 들어가 살다보니 전세 물량 없어 세입자들이 난리다"라며 "대규모 새아파트 입주장에도 매물이 안 나오다보니 가격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17 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 일대에서는 매물이 묶이면서 전세도 씨가 말라버렸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전용 84㎡)의 전세계약은 지난달 16억3000만원에 체결됐다. 최근에는 호가가 18억5000만원까지 나왔다.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에서는 "전셋값이 조만간 20억원을 찍을 것 같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집주인은 높아진 세부담에 월세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증금 보다는 보증부월세(반전세)를 300만~4000만원을 받겠다는 집주인도 많다는 게 대치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의 얘기다.

서울 동북권과 서남권 등 외곽지역의 상황도 심각하다. 지난해부터 중저가 아파트를 찾는 수요들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더니, 이제는 전셋집이 동난 상태다. 최근들어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계동 S공인 관계자는 "상계동 아파트 전셋값은 3~4월까지만해도 전용 84㎡ 매물이 3억5000만원대면 구했지만, 지금은 4억 후반대로 올랐다"며 "집주인들 전세는 안 내놓고 적어도 월세 100만원은 받으려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실제 상계동 청솔상계양우 아파트는 전용 84㎡의 전셋값이 지난 6월에만해도 3억 중후반대에 계약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4억25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고, 단지 내에 전세매물이 아예 없는 상태다. 주변에서는 조만간 5억원을 찍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주변에 20년차 이하에 아파트는 3억원대 전세 매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KB국민은행이 내놓은 지난 6월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73.5였다. 2016년 4월(174.7) 이후 최고치인데, 100을 넘어 20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세물량 부족이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지난해 3월 103.8로 100을 넘겼고 130.4(7월), 144.5(9월), 150.7(11월), 160.9(올해 2월)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둔촌 주공 기다릴까 or 3기 신도시 잡으러 갈까
전셋값 상승률이 가장 큰 강동구 일대에서는 무주택자들의 호소가 더욱 처절한 상태다. 공급 물량들의 불확실성이 짙어져서다. 강동구에서는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이라고 불리는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만2032가구로 신축되면, 이 중 4786가구가 일반분양된다. 최근 내부분란으로 분양이 미뤄지면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조합은 분양가를 두고 내홍이 깊어지면서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분양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높은 가격대의 분양가 상한제 혹은 후분양 쪽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동구에서는 둔촌주공 조합원들을 비롯해 일반분양을 목표로 무주택을 유지하고 있는 수요들이 많다. 길동에 거주주인 양모씨는 "무주택으로 점수가 높은 편이어서 당첨이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분양시기가 늦어지고 있는데다 후분양 얘기가 돌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당초 3.3㎡당 3000만원 이하로 분양가를 예상하면서 버텼던 무주택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조합의 목표대로 3000만원을 훌쩍 넘겨서 분양된다면 양 씨같이 대기하고 있던 무주택자들은 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무주택자들의 전세고민에 불을 붙인 건 3기 신도시도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사전 청약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신도시 등이 사전 청약에 포함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말부터 시작될 사전 청약에 앞서 1순위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하남으로 이사하는 수요들이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에 사전청약 물량을 늘리라고 지시하면서 미리 이주하려는 무주택자들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하남시의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사강변도시 일대는 전셋값이 자고 일어나면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전셋값이 서울권을 압도하고 있다. 이달들어 전용 84㎡ 기준으로 신고가를 쓴 단지로는 미사강변푸르지오가 6억원에 계약이 나왔다. 지난 1월만 하더라도 4억5000만원에 전세가 거래됐지만, 6개월여만에 1억5000만원이 올랐다.

또다른 신고가 단지로 e편한세상 미사는 5억8500만원을 기록했고, 미사강변도시 18단지도 5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신장동 유니온시티 에일린의 뜰은 5억6000만원으로 전셋값 신고가를 모두 새로 썼다. 이 단지들 모두 올해들어 1억원 넘게 전셋값이 상승했다.

덕풍동의 K공인중개사는 "이 동네(하남시) 전셋값이 서울보다 더 비싸다"라며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들이나 무주택자들이 3기 신도시 보고 많이 넘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사강변도시 주변에 오피스텔들이 많은데, 이 쪽으로 전월세를 문의하는 손님들도 늘었다"며 "정부가 언급하는 지역마다 집값이고 전셋값이고 다 오른다"고 말했다.
하남시 전셋값 6억, 서울 평균 전셋값 보다 높아
하남시에서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새 아파트들의 전셋값은 최근들어 5억원을 웃돌고 있다. 이는 서울 평균 전셋값 보다 높은 수준이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4억6129만원이었다. 이 조사가 시작된 2013년 4월 이후 최고치인데, 이 마저도 하남의 잘 나가는 아파트 전셋값 보다 낮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반기부터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1989년 이후 30년 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감정원 또한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과 교육 환경 양호한 지역에 대한 수요, 청약 대기 등에 따른 전세 수요 등이 꾸준하다"며 "이러한 가운데 실거주 요건 강화 등 규제와 풍부한 유동성 등으로 서울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공급대책을 꺼내들었지만, 애당초 시장진단부터 잘못됐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는 멸실을 앞둔 낡은 주택까지 세면서 주택공급이 충분하다고 하는데, 정작 수요자들은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수요자들이 환경이 좋은 곳에 새 아파트를 원하는데, 정부의 규제로 이제 이런 곳에는 집주인들이 직접 살게 됐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잇단 규제로 직접 거주하는 시대가 되면서, 시장에 새로 나오는 물량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주택자들이 원하는 주거형태인 '전세'인 경우엔 매물품귀가 더 심해지다보니 당연히 가격은 오른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그는 "전세 시대가 끝나고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집주인 혹은 월세 등으로 양분되는 시장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이렇게 변화되는 동안 전세로 살고 싶어하는 수요자들은 급등하는 전셋값은 감당하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아파트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빌라나 다세대 주택으로 수요자들이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오피스텔이나 빌라들도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 에코문정(전용 17㎡, 옛 13평)은 1억8000만원에 전세계약이 나왔다. 방이동에서 17년이 된 보보스타워도 전용 24㎡(옛 12평)의 전세가 1억6000만원에 체결됐다. 강남구 자곡동 일대에서는 15평 안팎의 오피스텔이 1억5000만원 이상으로 전세계약이 속속 나오고 있다. 월세 계약 대신 전세를 찾는 1~2인 가구들이 찾고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편 당정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차 3법'을 이달 안에 통과시킬 방침이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 신고제'를 비롯해 전세금 인상률을 최대 5%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이다. 임대채와 관련된 법안들은 점차 강화된 안들도 추가되고 있다. 표준임대료 도입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권한 강화, 신규 세입자에도 상한제 도입 등이 추진되고 있다.

당정은 이러한 임대차법들이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전셋값이 급등하거나 전세 물건이 월세로 전환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임대료 상승 문제를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도 우려점 중에 하나다. 주택임대시장의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대차 보호업 시행을 서둘러야 된다고도 의견도 있다. (계속)

김하나/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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