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무도 공모펀드 얘기를 안 해요. 수익률이 좋지 않다고 욕먹을 때가 오히려 나았던 것 같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이다. 그의 말에는 요즘 공모펀드, 특히 주식형 펀드의
초라한 실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주식 투자자에겐 10년여 만에 찾아온 ‘바겐세일’ 기회였다. 지난 3월 주가가 폭락하자 개인들은 대거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올 상반기 개인들은 국내에서만 약 40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반기 기준 사상 최대였다. 상반기 거래대금(2317조원)은 작년 연간 거래대금(2284조원)을 넘어섰다. 주식 전문 유튜버가 등장하고 서적도 불티나게 팔렸다. 주식 투자는 ‘문화’가 됐다.
그러나 공모펀드 시장은 주식 열풍의 ‘무풍지대’였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선 약 14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008년 8월 134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12년 연속 감소, 지난달 말엔 58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사모펀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환매 중단 사태가 터져도 공모펀드에 가입하겠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률이다. 투자자들은 ‘공모펀드에 맡겨선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10년간 주식형 공모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2.3%였다. 이 기간 평균 정기예금 금리(연 2.5%)보다도 낮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국내 공모펀드 시장이 암흑기에서 벗어날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지 기로에 섰다”며 “공모펀드가 국민의 대표적인 자산 증식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시장의 혼란, 동학개미운동의 한계 등은 공모펀드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개인들은 폭락장에 용기있게 뛰어들어 반등에 따른 이익을 봤지만 더 이상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믿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돈을 맡겨 굴리게 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운용사들의 노력과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공모펀드 시장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09년 ‘2차 암흑기’에 진입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두 번째 암흑기의 원인도 1차 때와 같았다. 수익률이다.
올해 공모펀드 시장은 다시 기로에 섰다. 사모펀드 시장은 망가졌고, ‘동학개미운동’처럼 폭락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상승할 때 수익을 챙길 기회도 다시 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공모펀드에 기회다. 전문가들은 운용사, 판매사, 투자자 모두 과거의 실책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2005년 20조원이던 주식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2008년 131조원으로 늘었다. 2007년 67조원, 2008년 24조원이 들어왔다. 2007년 나온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는 순식간에 수조원을 끌어모으며 전성기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2008년 9월 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는 공모펀드의 전성기를 하루아침에 암흑기로 바꿔버렸다.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는 큰 손실을 입었다. 설정액이 3조원이 넘었던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3’에 2007년 11월 가입한 투자자가 원금을 회복하는 데 약 3년이 걸렸다. ‘신한BNPP봉쥬르차이나 2’는 2007년 10월 가입한 투자자가 원금을 회복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상당수 투자자는 그 이전에 손실을 보고 펀드에서 빠져나왔다.
운용사들은 오해도 많다고 항변한다. 2007년 출시된 ‘미래에셋 인사이트’는 약 1년 만에 수익률이 -60%를 찍은 펀드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올해 6월 말까지 설정 이후 수익률은 127.1%로 같은 기간 코스피 총수익(TR)지수(배당 재투자를 가정한 지수) 수익률 26.2%를 웃돈다. 설정액이 3조7000억원에 달했던 ‘한국투자 삼성그룹적립식 1’도 2004년 11월 설정 이후 408.1% 수익률을 냈다. 두 펀드 설정액은 현재 각각 2088억원과 247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펀드 수익률이 악화되자 투자자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돈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김동윤/임근호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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