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바짝 엎드린 부동산금융업계

입력 2020-07-26 18:33   수정 2020-07-27 00:18

“자칫 괘씸죄로 걸렸다가 영업 자체를 못할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듭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부동산 전문 운용사 임원의 목소리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최근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이지스자산운용이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포기하고 백기를 들자 부동산금융업계 전체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법무부와 검찰은 물론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까지 일사불란하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이지스가 46가구 아파트 한 동을 매입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추 장관은 지난 20일 SNS를 통해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라고 비판했다. 이때만 해도 부동산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추 장관의 오해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이틀 뒤 법무부가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 등의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칼을 빼들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A자산운용 대표는 “갑작스런 정부의 강경 방침을 보면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떠올랐다”며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내 처벌할 수 있겠다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A자산운용 대표의 우려는 몇 시간 뒤 현실이 됐다. 행안부의 지시를 받은 새마을금고가 이지스가 주택을 매입하며 받아간 담보 대출의 회수에 나섰다. 다음날인 23일 오전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까지 나서 “자산운용사의 강남 아파트 매입 과정에서 대출 관련 규제 위반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지스는 같은 날 오후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심려를 끼친 점을 사과드린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추 장관의 발언 후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부동산금융을 다루는 여의도 증권가 분위기도 흉흉하다. 한 대형증권사 투자은행(IB) 임원은 “추 장관의 금융과 부동산 분리론을 듣고 처음엔 ‘부동산금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부가 시장을 모르기에 더 무서워졌다”며 “검찰 조사를 받는 회사나 개인은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조사 자체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부동산금융과 관련한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B대체운용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주택 투자가 위법이 아닌데도 ‘강남’이나 ‘통째 매입’ 같은 상징성 때문에 마치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매도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법무부 장관의 말대로 풍부한 금융자본이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린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채택한 주요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해소할 방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 장관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발언이 몰고올 후폭풍을 좀 더 고민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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