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명의 집에 아내 혼자 못 산다"…현실 외면한 정책에 분통

입력 2020-08-05 14:22   수정 2020-08-05 14:37


정부 여당이 초스피드로 처리한 임대차 3법에서 허점이 발견되고 있다. 혈연관계가 포함되지 않은 집주인 가족이 들어갈 살 경우 실거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31일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에 따라, 집주인이 집에 실거주를 할 경우에는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은 갱신 거절 시 실거주 기준을 ‘임대인과 직계존속·직계비속’으로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혈연관계로만 이뤄진 경우만 '집주인 실거주'를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남편 명의의 집에 아내만 살거나, 아내 명의의 집에 남편만 들어갈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위반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자녀 없이 떨어져 사는 부부나 대가족이 살다가 분리해서 이사해야 하는 경우에는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

이는 임대차법이 통과되면서도 문제로 제시됐던 부분이다. 정부는 "배우자 홀로 전입신고를 하고 살면 집주인 실거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집주인 실거주 인정 범위를 두고 여러 안이 나왔는데, 배우자만 세대를 분리해 실제 거주한다고 속일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이렇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위집 못 들어가는 처가식구, 며느리집 안되는 시댁식구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데다, 부부가 떨어져 살 경우 한 쪽에서 자녀를 양육하다보면 다른 쪽에서는 독거할 수 밖에 없어서다. 집안 사정으로 형제의 가족이나 배우자의 가족들이 살아야하는 상황이 되어도 실거주 요건이 될 수 없다.


자신 명의의 집에 아들부부가 자녀없이 살다가, 아들이 거주지를 옮기거나 사망할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자녀없이 딸부부가 살다가 딸이 이주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실거주 요건이 될 수 없다. 사위 명의의 집에 장인·장모를 비롯해 처가식구들이 살거나 며느리 명의의 집에 시부모 및 시댁식구들이 사는 것도 실거주 요건이 될 수 없다. 이런 사례들 모두 임차인이 소송을 제기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직장이나 교육 문제로 떨어져사는 부부들도 많고 자녀없이 부부만 사는 집들도 많다. 다주택자가 아니더라도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부모가 연로해 모셔야하는 문제가 있거나 한 쪽의 사망으로 자녀들의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간의 증여가 이뤄지고 실거주로 들어가거나 공동명의로 변경하지 않는 이상 위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세종시를 비롯해 혁신도시에서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특별공급으로 서울 및 수도권에 집이 한채 있고 지방에 한 채가 더 있는 경우다. 경북 김천혁신도시의 A공인관계자는 "부부 공무원들에서 이러한 경우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아내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에 남편이 들어가 사려고 해도 기존 세입자가 있다보니 곤란한 상황이 됐다. 현재 아예 매매로 내놨는데 시장이 좋지 않다보니 잘 팔리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임차인으로 하여금 '집주인 실거주' 여부를 쉽게 가릴 수 있도록 보완책을 제시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주민등록법의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 세입자에게 해당 주택의 정보열람을 쉽게 해줄 방침이다.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거짓으로 실거주 이유를 든 집주인에 대해 전 세입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근거를 쉽게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한 경우,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한 기간(향후 2년간)동안 해당 주택의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법은 임대인과 임차인, 소유자, 금융기관에 이와 관련한 정보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이 대상을 갱신 거절 임차인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을 거부당한 세입자는 언제든 자신이 전에 살았던 집에 집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더라도 중간에 부부 중에 한명이 이사를 하거나 사생활로 별거를 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실거주를 하다가 명의를 변경하거나 집을 매매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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