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의 디지털 세상] 새로운 '디지털 대면문화'를 선도하자

입력 2020-08-10 20:45   수정 2020-08-11 00:23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이 말을 어떻게 하든 상대와의 접촉 경험과 그가 처한 상황을 검토해 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의사소통 이론을 정리하며 고맥락(high-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context) 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고맥락 문화는 서로 간 의사소통에서 상황과 상대방의 표정, 그간의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암묵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고 비언어적이고 상황 중심적인 메시지의 비중이 높다. 반면 저맥락 문화는 모든 전달돼야 할 메시지가 언어 또는 서면으로 확실히 정리돼 있어야 한다.

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고맥락 문화는 한국 일본 중국 아랍 남유럽 및 라틴아메리카에서 강하고, 저맥락 문화는 미국 독일 영국 네덜란드에서 강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보고서 등의 공식적인 양식을 선호하지만,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의례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디지털 기술들은 저맥락 문화를 잘 반영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를 통해 문서화된 정보가 양식에 맞춰 제공되고 이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익숙해지면 편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소비자 사이에선 여전히 디지털 문화에 대한 불편함과 이로 인한 정보의 비대칭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소통이 비대면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의 국민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찾아가서 유행하는 옷 트렌드도 듣고 추천받아 구매했던 셔츠 가게, 노후 재테크와 연금 관련 사항 등을 조언해주던 은행 상담사, 액세서리를 설명하고 추천해주던 서울 홍대 거리의 작은 공방 등이 비대면(언택트) 문화라는 시대의 트렌드로 인해 더 이상 면대면의 소통 방식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아마존, 쿠팡, 인터넷뱅킹 등의 디지털 문화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에 설자리를 잃어 가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변환이라는 것이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트 등에만 국한되지,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에서는 여전히 사람 간 대면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주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런 변화의 범위가 훨씬 넓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맥락 사회의 소비자는 일상의 작은 소통도 디지털 정보를 기반으로 하게 되면서 더 불편해지고 정보의 격차도 느끼게 됐다.

과연 고맥락 사회의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소통의 방식은 없는가. 모든 상품 정보와 구매 절차 등을 웹페이지에 빼곡히 적어 뒀다는 것만으로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전자정부 서비스도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면 무엇이 있고 하는 등의 담당자 이야기만으로 고맥락 문화에 친숙한 국민이 편리하게 행정 서비스를 받았다고 느끼겠는가. 얼마 전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때 줄 서 있던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서 “휴대폰으로 몇 번만 클릭하고 정보를 넣으면 되는데”라면서 저맥락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화 서비스에 소외된 분들을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정부는 ‘K방역’의 성공을 기반으로 K패션, K문화 등을 선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그동안 저맥락 문화에 기반을 둔 디지털 문화를 고맥락 문화에서도 쉽게 통용되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로 바꿀 수는 없을까. 비록 면대면 의사소통은 못해도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서로 얼굴을 보면서 문의하고 서비스를 받는 새로운 ‘디지털 대면 문화’를 형성해갈 수는 없을까. 소식을 전하는데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소통하는, 저맥락 문화에 기반한 페이스북에는 정작 서로 얼굴을 보면서 소통하는 기능은 없다. 여행지의 사진을 놓고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고맥락 기반의 페이스북을 우리가 먼저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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