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민문화의 상징 이자카야(일본식 술집)가 사라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참화속에서도, 1990년대 버블(거품)경제 붕괴 때도 서민들의 아지트로서 변함없이 사랑받았던 이자카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자카야를 찾은 손님 수는 3월 40.1% 급감한 것을 시작으로 4월(-89.5%), 5월(-88.4%), 6월(-58.7%)에 걸쳐 증발하다시피 했다. 그날그날의 매출로 운전자금을 충당하는 이자카야가 버텨내기는 무리였다. 2018년말 기준 전국의 이자카야는 1만189개. 4월 전국 이자카야의 숫자는 단숨에 4.3% 줄었다. 불과 한 달 만에 440여개의 이자카야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7월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자 도쿄도는 8월3일부터 31일까지 이자카야의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단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밤 10시부터 막차시간까지는 매출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에 8월 이후 문을 닫는 이자카야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몸집이 큰 이자카야 체인들이 먼저 점포수를 줄이고 나섰다. 이자카야 체인 아마타로(甘太?)와 와타미(和民)는 각각 전체 점포의 10%가 넘는 196곳과 65곳을 닫기로 했다. 와타나베 미키 와타미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전 점포의 30%에 달하는 150곳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자카야 체인 쓰카다농장(塚田農場) 235개점을 운영하는 에이피컴퍼니는 지난 6월 도쿄 시부야에 '쓰카다식당'이라는 별도의 점포를 열었다. 쓰카다식당의 주력은 점심 영업. 산지 직송 시골닭으로 요리한 치킨난반 등 8개의 정식 메뉴를 제공한다. 오후 4시부터는 술과 안주도 팔지만 이자카야가 아니라 정식집임을 강조하기 위해 간판도 쓰카다농장에서 쓰카다식당으로 바꿔달았다.
에이피컴퍼니는 아예 업종을 이자카야에서 점심 영업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으로 바꿀 계획이다. 10년에 걸쳐 매년 5~10개씩의 쓰카다농장을 쓰카다식당으로 전환한다.
이자카야 체인 쇼야(庄や) 616개점을 운영하는 다이쇼그룹도 전체의 60%에 달하는 영업점에서 점심 영업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의 객단가는 심야의 3분의 1 수준. 그런데도 쇼야가 점심 영업에 나선 건 '퇴근길 한잔' 수요는 사라진 반면 낮시간대의 회복속도가 그나마 빨라서다.
모바일결제 정보회사 포스타스에 따르면 6월 한 달간 점심시간대(오전 11~오후 2시) 고객수는 전년 같은 기간의 67%까지 회복됐지만 저녁시간대(오후 5~10시)는 52%에 그쳤다.
이자카야 체인 긴노쿠라(金の?)를 운영하는 산코마케팅푸드는 점심시간 동안 영업점을 업무공간으로 임대한다. 재택근무 수요가 늘어나자 낮시간대 업종을 이자카야에서 공유오피스로 한시 전환한 셈이다. 가게의 대부분이 개별실 구조라는 특성을 활용한 마케팅이다. '공유오피스 긴노쿠라' 이용객들은 외부 음식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와타미는 닭튀김 전문점 '가라아게노텐사이(唐揚げの天才·닭튀김의 천재라는 의미)'를 시작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길목에 자리잡는 이자카야와 달리 가라아게노텐사이는 지역 상점가에 위치하고 있다. 주부와 학생으로까지 소비자층을 넓히기 위한 입지다. 7월부터는 배달서비스도 시작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배달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약 300만엔((약 3379만원)인 월간 손익분기점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이자카야 체인들이 업계 탈출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자카야 시장이 사라진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다. 요네야마 히사 다이쇼그룹 사장은 아사히신문에 "코로나19 이후 직장회식이 사라질 것"이라며 "고객들의 기호도 '단숨에 취하겠다'보다 '제대로 술맛을 음미하자'로 바뀌고 있어 이자카야 업태를 졸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자카야는 기본적으로 박리다매형이다. 매출이 20%만 줄어도 적자가 난다. 변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사에 직결되는 문제다. 아마타로 운영사 코로와이드의 노지리 고헤이 사장은 요미우리신문에 "'애프터 파이브(after5·퇴근시간 이후)의 생활양식이 변했다"며 "이자카야의 매출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출제한과 대규모 휴업으로 이자카야에 주로 납품하는 업소용 맥주 판매가 격감하면서 맥주맛 알콜음료에 원조가 1위 자리를 빼앗기는 이변이 일어났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등 대형 맥주 4개사의 4~5월 업소용 맥주 매출은 80~90% 줄었다. 한 맥주회사 임원은 "업소용 맥주의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주세제도는 맥주에 들어가는 맥아의 양에 비례해 세금을 붙인다. 맥아를 쓰지 않는 다이산은 가격도 싸다. 350㎖짜리 맥주 1캔의 소비자 가격이 218엔(약 2455원) 전후인 반면 같은 양의 다이산은 127엔 전후로 캔당 90엔(약 1014원) 차이가 난다. 코로나19로 경기가 급속이 냉각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집술', '혼술'이 늘면서 1000원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신용카드 결제데이터 회사인 JCB소비나우에 따르면 긴급사태가 선언된 4월1~15일 이자카야의 신용카드 사용규모는 75% 감소한 반면 주류 판매점의 사용규모는 34% 늘었다. 아사히와 기린 등 양대 맥주회사들도 다이산 신제품을 집중 투입하고 TV 광고를 대폭 늘리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의 주세법이 개정되는 10월부터 다이산의 가격은 캔당 10엔 가량 오른다. 맥주와 다이산의 주세가 같아지는 2026년 10월이면 가격 메리트는 더욱 줄어든다. 그러자 알콜도수는 맥주보다 높으면서 값은 캔당 119엔에 불과한 쥬하이(일본소주에 탄산음료를 섞은 술)로 수요가 몰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류업계에서는 2026년께 쥬하이의 판매량이 2019년보다 40% 증가해 맥주계 음료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