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집을 안 보여줘요"…집주인들 '패닉'

입력 2020-08-12 13:41   수정 2020-08-12 14:58



”집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4년 전세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세입자들이 집 팔리게 협조하겠어요?"

"집을 살려고 보니 세입자 계약기간이 1년 넘게 남아있네요. 대출을 끼고 집을 사면 내가 6개월 안에 들어가야 한다던데… "

이달부터 ‘임대차 3법’이 시행된 후 서울 부동산시장에서는 전세는 물론 매매도 얼어붙고 있다. 특히 전·월세를 주고 있는 집주인들은 집을 팔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입자들이 '집 구경'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땅한 매수인을 찾기도 하늘에 별 따기가 됐다.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이내에 거주해야 한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매입할 사람을 찾거나, 세입자 계약 기간이 6개월 이하로 줄었을 때만 집을 내놓을 수 있는 셈이다.
임대차법 시행 후 "세입자가 집 안보여줘"
서울 강남 반포동과 서초동에 집을 각각 집을 한 채씩 보유하고 있는 김모 씨(61)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자 전세를 놓고 있는 서초동 집을 공인중개업소에 내놨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중개인에게 "매수자가 안 나타나느냐"고 물었더니 "세입자들이 집을 보여주지 않아 거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중개인은 "전세가 껴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놓는 경우는 세입자는 대부분 집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며 ”기존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4년 전세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괜히 주인이 바뀌길 바라겠는가“라고 했다. 양재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모 씨(59)도 ”지난달에도 매수 문의는 많았지만 매매 계약은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세입자들이 집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해서인데, 수억원 하는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매도 물량 중 상당 수가 전세를 낀 집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동구 고덕동 일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고덕동 새 아파트에서 매도를 위해 내놓은 집 10가구 중 8가구는 기존에 전세계약을 맺은 상태다. 서초구 서초동의 동원베네스트·신원아침도시·벽산블루밍 등 이 일대 아파트들도 전세 낀 매매 물건이 전체 매도 물량의 90%가량 차지한다는 게 이 일대 중개업소들의 분석이다.

서초동 I공인 관계자는 “주택을 딱 한 채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집을 팔려면 매도 후 이사갈 집이 있어야하는데 이미 기존 살던 집보다 상급지 주택은 값이 너무 많이 올랐고 매물도 없다”며 “결국 매도 물량 대부분은 세입자를 둔 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 부동산시장에서는 매매 거래가 크게 줄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6월 1만5599건에서 지난달 8926건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집주인들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압박은 강해지는데 집을 마음대로 팔 수도 없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내뱉고 있다. 방배동에 보유한 집을 팔기 위해 내놓은 유모 씨(51)는 “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빨리 팔라고 난린데 세입자들은 협조를 안해주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집을 내놓은 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매수 희망자가 있어도 집을 못 파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각종 규제에 무주택 실수요자도 "집 사기 너무 어렵다"
매수자들도 집을 사기 어려워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우선 대출이 쉽지 않다. 현재 서울과 같은 투기과열지구에서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가 40%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2·16 대책으로 9억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LTV 20%를 적용,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서울 중위가격(9억2000만원) 기준으로 3억6400만원만 대출이 나오는 셈이다. 나머지 5억5600만원을 현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세를 낀 집을 사기는 더욱 어렵다. 40대 무주택자 양모 씨(47)는 지금껏 모은 돈을 보태 지난달 마포구 성산시영 전용 50㎡ 아파트를 사려다 포기했다. 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집은 9억원이 넘어 대출을 받더라도 보유한 자금으로 구매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약간 저렴한 세를 낀 주택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사려했지만 이마저도 전입의무 요건 때문에 매수하지 못했다.

양 씨가 매수하려고 했던 집은 8억5000만원가량으로 2억2000만원짜리 전세가 끼어 있었다. 양 씨가 추가로 1억원가량 주담대를 받으면 집을 매매할 수 있었지만, 이 경우 6개월 이내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거주를 해야한다. 6.17 대책 이후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내 집을 사기 위해 주담대를 받는 경우 집값과 관계없이 6개월내 전입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양 씨는 “세입자의 전세 계약기간이 1년이 넘게 남아 있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무주택자 실수요자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겠다더니 청약도 안돼, 집을 매수하는 것도 어려워, 전셋값은 계속 뛰고 매물도 없어, 대체 어디서 살란 말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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