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감소로 경제위기 불러"…부자의 저축이 위험한 이유 [노경목의 미래노트]

입력 2020-08-17 00:09   수정 2020-08-17 09:38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여러 독특한 경제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가격은 사상 최대치를 매달 갱신하고,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대치를 향해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실업자가 급증하고 저소득층의 대출 연체도 늘어나고 있다.

양극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호황의 한가운데나 극심한 불황일 때 벌어지는 상반된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보기 드물다. 코로나19로 극심해진 양극화가 만성적인 수요 감소를 불러 경제를 수렁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한국과 미국에서 나란히 나왔다.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경영대 교수가 함께 쓴 '부자들의 늘어나는 저축 덩어리와 가계 부채 증가(The Saving Glut of the Rich and the Rise in Household Debt)'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산가격 변화가 경제적 불평등과 대외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다.
빈부격차는 어떻게 총수요를 줄이나
두 보고서는 모두 '불평등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경제학의 통념을 비판하는데서 시작한다. 일부 사업가나 계층이 먼저 성공해 부를 축적하면 이를 다시 투자해 생산과 혁신이 늘어나 더 큰 부를 일구고, 이는 투자의 규모를 키우는 선순환으로 작용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다.


우선 수피 교수 등의 논의를 살펴보자. 이들이 1960년부터 최근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국민생산에서 상위 1% 부자들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에서 10%까지 크게 뛰었다. 하지만 투자는 위 그래프에서 보듯 계속 줄고 있다. 자산증가가 투자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와 가계 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를 돈을 풀어 부양한 결과다. 이같은 부채 증가가 소비 감소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부채의 무게를 덜어주는 수 밖에 없다. 미국 금리가 코로나19로 제로금리 수준까지 이르게 된 이유라는 설명이다.

수피 교수 등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이같은 정부 및 가계 부채 관련 채권의 상당 부분을 고소득자들이 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금융상품 투자의 형태를 갖춰 직접적인 대부는 아니지만 사실상 고소득자들이 저소득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1982년을 모수로 잡고 미국 소득 분위별로 순가계부채를 나타낸 그래프다. 하위 90%의 가계부채는 금융위기로 1982년 대비 4배까지 늘어났다가 최근 3배 정도로 떨어졌다. 하지만 상위 1%는 부채가 1.7배 줄었다. 다시 말해 1982년 당시에 지고 있던 부채를 다 갚고 순수 채권자가 됐다는 의미다.

다른 연구를 통해에서는 금융위기로 폭증한 미국 정부 채권의 상당 부분을 미국내 상위 10% 소득자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늘어난 미국 정부 부채 48% 중 20%는 이들이 빌려준 것이다. 중국 등 대표적인 채권국들이 소유한 미국 국채와 맞먹는다.

결국 이같은 구조 속에서 소득 하위 90%는 상위 10%에게 진 빚을 상환하느라 돈을 쓸 여력이 줄어든다. 자산이 늘어난 상위 1%역시 투자나 소비보다 저축 자체에 더 힘을 쏟으며 수요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 더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경제 전체가 본격적이 불황에 빠져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수피 교수 등은 부채를 중심으로 극심해진 빈부격차를 어떻게 줄이는지가 결국 장기적인 경기 활성화의 키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오랫동안 부채 문제에 천착해 왔다. 2014년 출간된 <부채로 지은 집>을 통해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국서도 비슷한 흐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도 논증의 엄밀성은 떨어지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수피 교수의 그것과 비슷하다. 연구원장이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고, 해당 보고서 역시 균형감각을 상실한 사례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국내 상황에 맞춰 생각의 단초를 던져준다.


위 그래프는 소득 상위 20%의 한계소비성향 변화를 1990년부터 나타낸 것이다. 등락을 거듭하기는 하지만 전체 계층 평균 대비 낮아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보고서에서 저자들은 소득 상위 계층은 소비성향이 낮아지고 소득 하위 계층은 쓸 돈이 없어서 사회 전체의 수요는 감소한다고 말한다.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이같은 현상은 심해져 전체 수요를 감소시키고 경기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13일 정소람 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의 보도는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시중 금리가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지만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의 연체율은 최대 12%까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돈을 풀고, 일부는 그 돈으로 투자를 하는 사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미국에서는 채권이 하위 90%에서 상위 10%로 지대가 이전되는 통로라면,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이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는 월세 전환 등의 과정에서 무주택자는 주거비 부담이 높아져 소비가 줄어들고, 다주택자는 현금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다주택자의 수입 및 자산 증가가 투자나 소비로 흘러들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수요는 감소한다.
정말 부자만 잡으면 해결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논설위원 마틴 울프는 수피 교수 등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해법은 소득 분배를 개선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보다 급진적인 방안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급진적인 방법으로 시장의 신호를 무시했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사례를 우리는 요즘에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더 많이 줘서 총수요를 늘릴 수 있다면 소득주도성장도 성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한국에서는 2024년부터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무인자동차 시대가 단적인 예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이 그랬듯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득 양극화와 저금리, 수요 감소 등이 서로 맺고 있는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리 인하가 한계에 다다르면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은 일본 등의 선례를 생각할 때 무시하고 지나치기 어렵다.

아울러 부동산 등 자산을 기반으로 한 지대 추구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합리적인 선에서 줄여갈 방법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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