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투자 실패했던 손정의, 나스닥 베팅 성공하나 [김산하의 불개미리포트]

입력 2020-09-13 07:00   수정 2020-11-26 00:03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나스닥 콜옵션(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옵션) 투자 소식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친 한 주 였습니다.

지난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올 봄부터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테슬라·구글 주식을 40억달러(약 4조 8000억원)어치 매입한 데 이어, 최근 한 달간 40억달러 규모의 나스닥 콜옵션까지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난주 기술주 급등으로 나스닥 지수가 사상 최초로 1만2000선을 돌파했다가 급락한 과정에서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옵션 매매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습니다. 이같은 소식에 나스닥의 조정이 더욱 길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이번주 나스닥 지수는 제대로 된 반등 한 번 오지 못한 채로 1만853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도 시가총액이 14조원 이상 증발했습니다. 나스닥 콜옵션에 거액을 베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져 투매 현상을 보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11일 파생상품 투자 전략 변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손정의 회장, 최근 비트코인·위워크·우버 등 투자 실패 잇따라
손 회장은 재일교포 3세 출신으로 일본 최고의 부호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직원 2명과 소프트뱅크를 창업해 일본 3대 통신사로 키웠고, 2000년 초창기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약237억4000만원)을 투자해 2500배 수익을 내는 등 투자계의 거물로 손꼽힙니다. 그가 직접 운용하는 ‘비전 펀드(Vision Fund)’는 100조원 규모의 운용 자금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벤처 펀드가 됐습니다.

손 회장은 신생 IT기업에 장기로 투자하며 큰 돈을 벌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근 투자 실적은 좋지 않습니다. 예컨대 2017년 말 손 회장은 개인 자산으로 비트코인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2018년 1억3000만달러(약 1543억원)의 투자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었죠.

또 손 회장이 비전 펀드를 통해 14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위워크는 부실한 재무 상태와 최고경영자(CEO)의 도덕적 해이 논란 등으로 큰 위기를 겪었고, 비슷한 규모를 투자한 우버도 지난해 실적 악화와 고평가 논란 등을 겪으며 큰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올 1분기 소프트뱅크그룹은 1조4381억엔(약16조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는데, 이는 비전 펀드에서 1조9000억엔(약21조2286억원)의 손해를 본 영향이 컸습니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투자 전략을 바꿔 신생 기업 대신 이미 상장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정보기술(IT)기업들에 레버리지 베팅을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주 콜옵션 매도에 성공했다면 콜옵션만으로 30~40억 달러가량의 차익을 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지난 1분기에 난 손실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는 수익입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주주들은 이번 나스닥 투자 건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손 회장이 최근 수차례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를 단행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약 8%가량 폭락한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투자자들의 성난 민심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 기관투자자들은 누가 이 같은 고위험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지 밝히라고 소프트뱅크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스닥 숏 세력, 손 회장 뉴스로 시장 불안해진 틈 노렸나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나스닥 시장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만약 손 회장이 이번 기술주 급등에서 콜옵션을 매도하지 않았다면, 언제 40억달러에 달하는 옵션 매도 물량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40억달러어치의 옵션이면 현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적어도 수십조원 규모입니다.

또 이 틈을 타 숏(Short) 세력(지수 하락시 돈을 버는 포지션에 투자한 집단)이 결집, 이번 시세하락을 한층 더 심화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손 회장 뉴스로 인해 시장 심리가 불안해진 상황에서 매도 물량을 늘리면 쉽게 지수 폭락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손 회장이 콜옵션을 집중 매수한 한 달간 나스닥100 지수는 1만800선에서 1만2400까지 급등했습니다. 반면 소프트뱅크의 나스닥 콜옵션 매수가 세간에 알려졌을 때 나스닥100 지수는 이미 고점인 1만2400에서 7%가량 하락한 1만1600선이었습니다. 고점에서 옵션을 매도하지 않았다면 손 회장의 평가차익 상당 부분이 줄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매도세력이 결집해 일시적으로 지수 하락을 유도하면 손 회장이 손해를 보기 전에 포지션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손절매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40억달러 규모의 거대한 포지션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정도의 물량이 한 번에 시장에 투하되면 더 큰 하락을 불러일으켜 추가 손실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옵션 매도량이 많아지면 현물시장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무너진 현물시장이 다시 옵션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손절매 대신 추가 자금을 투입해 현재의 포지션을 방어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미 가진 패를 모두 보여주면서 도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장기간 노출된 손정의 회장과 소프트뱅크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자금 동원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도 용이합니다. 손 회장 포지션의 청산가격과 가용 자금을 유추해, 유리한 시점에 매도 물량을 쏟아낸다면 손 회장은 정말 힘든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숏 세력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먹잇감이 없죠. 설사 손 회장이 이미 포지션을 정리했다고 해도 이번 소식으로 인해 시장의 분위기 자체가 숏 세력에게 우호적으로 형성됐습니다. 하락을 이끌어내기에 최적의 타이밍이 된 겁니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지난 5일 “앞으로도 콜옵션 매수를 지속할 방침”이라면서 롱 포지션 세력(지수가 오르면 수익을 내는 포지션에 투자한 집단)들의 결집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11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콜옵션 투자 대신 보수적인 투자 전략으로 수정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정의 회장, 이미 큰 차익 봤을 것”

소프트뱅크의 나스닥 콜옵션 투자를 놓고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손 회장이 큰 이익을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콜옵션 매수 건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나스닥 지수가 최저점을 찍었던 지난 봄부터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테슬라·구글의 현물 주식을 40억달러나 매수했고, 이로 인한 시세 차익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또 베테랑 투자자인 손 회장이 나스닥 지수가 전고점을 한참 넘긴 고평가 상태에서 거의 5조원에 달하는 콜옵션을 매수해 놓고 이를 만기까지 보유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손 회장은 2000년 IT버블을 겪으며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이 하루아침에 100분의 1로 쪼그라드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시세 폭락과 실리콘밸리 버블 붕괴까지 경험했죠. 그런 그가 버블의 최고점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콜 옵션을 40억달러나 매수했을리 만무하다는 겁니다.

보유한 콜옵션을 매도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등의 외신들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 소프트뱅크가 지난주 기술주 급등 당시 콜옵션을 매도해 상당한 차익을 챙겼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손 회장과 일부 측근들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소프트뱅크의 실제 옵션 보유량을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소프트뱅크는 수많은 주주들을 위해 보유 주식을 공개하고 있지만, 보유한 옵션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 회장은 과연 나스닥 콜옵션 투자에 성공했을까요. 그의 투자 성공 여부는 추후 실적 발표를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나스닥 시장을 쥐락펴락한 최초의 아시아인이됐다는 점에서 이미 '본전'은 찾은게 아닐까요.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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