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 점심 배달 3시간 뛰고 1만5000원 벌었습니다"

입력 2020-09-14 16:07   수정 2020-09-14 17:34


지난 11일 낮 11시 30분 서울 선릉역과 삼성역을 잇는 테헤란로. 빌딩숲 사이로 점심을 먹기 위해 직장인들이 쏟아져나오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는 점심을 실어나르는 라이더(배달원)들로 붐볐다. 손님보다 라이더가 더 많이 방문하는 식당도 적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바꿔놓은 풍경이다.

유통 스타트업 메쉬코리아의 배달대행 브랜드 ‘부릉’을 통해 바빠진 라이더를 일일 체험해봤다. 선릉역 메쉬코리아 본사에서 출발하기 전 보온·보냉백을 둘러매고 직원에게 들은 주의사항은 딱 두 가지였다. '주문자의 비대면 전달 요구를 반드시 지켜달라'와 '휴대폰 배터리가 절대 떨어져서는 안된다'였다. 실제로 주문자의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밀려드는 주문콜 알림 탓에 출발 두 시간도 안돼 바닥이 났다.
손님보다 라이더가 더 많은 식당들
11시 10분 삼성역 인근 파리바게뜨에서 첫 주문을 받아 선릉역의 한 회사로 배달했다. 파리바게뜨는 최근 이 일대에서 가장 주문이 많은 인기 브랜드다. 간편하게 샌드위치나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려는 수요 때문이다. 파리바게뜨를 비롯한 베이커리 배달 주문은 이날 50여건의 주문 콜 가운데 7건에 달했다.


테헤란로는 글로벌 외식 브랜드들의 격전지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낸 한국 1호점들이 즐비하다. SPC그룹이 지난 7월 코엑스몰에 연 미국 LA 달걀 샌드위치 전문점 브랜드 ‘에그슬럿’이 대표적이다. 에그슬럿은 개점 초기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배달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계속 강화되자 개점 두 달 만에 배달을 시작했다. 이날 에그슬럿 매장 앞에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은 10명 남짓이었다. 이에 반해 라이더를 기다리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있는 쇼핑백은 30개에 달했다. 에그슬럿을 주문한 선릉역 인근 소비자는 주문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기자가 배달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밀려드는 주문 탓에 라이더 매칭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미노피자가 지난해 12월 들여온 홍콩 딤섬 레스토랑 브랜드 팀호완의 배달앱 주문도 많았다. 팀호완의 창업 셰프인 막 콰이푸이는 지난해 방한 기자간담회 때 "배달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직접 와서 갓 만든 딤섬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 1차 확산이 한창이던 4월 팀호완은 딤섬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수제버거 브랜드 바스버거 매장엔 라이더와 사전결제한 방문포장객이 몰려들어 일반 방문 손님들은 주문 자체에 애를 먹었다. 1분에 3~4명씩 라이더가 찾아왔다.

홀테이블 없이 배달만 하는 매장들은 성업 중이었다. 놀부부대찌개를 운영하는 외식기업 놀부가 운영하는 공유주방, 신세계푸드의 배달전문 매장 '셰프투고', 아이스크림 브랜드 '밴엔제리스' 등 배달전문 매장에서도 배달 요청이 쏟아졌다. 식당이 아닌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 편의점 GS25 등의 일감도 있었다. 환자식 수요가 많은 죽도 배달 수요가 많은 품목이었다. 선릉역 인근 본죽에도 라이더만 드나들었다. 매장 손님은 없었다.
"좋은 동선 잡아라" 전투콜·배달콜 쇄도
점심 주문 5건을 배달하는 세 시간 동안 주문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배달앱을 통해 선결제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음식값을 직접 받을 일도 없었다. 기사 전용 앱에는 ‘강아지가 놀랄 수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아라’ ‘문 두드리지 말고 문자를 달라’ 등 비대면 요구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올라와 있었다. 문 앞에 음식을 놓은 뒤 ‘문 앞에 안전하게 배송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라이더와는 전쟁을 치뤄야 했다. 주문 건수를 잡기 위한 경쟁이 실시간으로 벌어졌다. 이른바 ‘전투콜’이다. 전투콜과 쏟아지는 배달 주문 탓에 85%에서 시작한 휴대폰 배터리 용량은 두 시간 만에 10%로 뚝 떨어졌다. 보조배터리 없이는 일할 수 없었다. 식당과 목적지간 거리가 1㎞ 이하인 동선이 좋은 주문은 다른 라이더가 금새 채갔다.

라이더 운송수단은 오토바이 위주에서 전기자전거, 퀵보드, 도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르는 학생, 주부도 라이더가 될 수 있다.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는 기자는 부릉에서 전기자전거를 대여해 배달했다. 길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찾아준다. 이런 이유로 라이더 자격 조건이 완화되고, 배달 건수도 늘자 라이더 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부릉과 제휴한 라이더 수는 2018년 5월 2만명에서 지난 5월 3만8000명까지 증가했다. 배달의민족이 직접 관리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 소속 라이더 수도 3000명을 넘어섰다.

전투콜에 미숙했던 기자는 3시간 동안 배달 5건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건당 받은 금액은 3000원~3200원 정도다. 수수료를 떼고 1만5184원을 받았다. 전기자전거는 오르막 경사 등을 수월하게 넘을 수 있어 효과적인 운송수단이었지만 오토바이보다는 속도를 낼 수 없어 거리가 먼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초보 라이더로 길을 찾는데 익숙치 않아 많은 배달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테헤란로 직장인이 먹던 메뉴, 대치동 주부가 주문
눈에 띄는 것은 상권의 확장이다. 직장인과 비즈니스 미팅 수요를 겨냥해 테헤란로에 자리잡은 음식점들은 배달의 발달로 인해 대치동 주택가에서도 주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삼성동 맛집 브랜드 주문 상당수가 3㎞ 떨어진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대치래미안팰리스에서 들어왔다. 넥타이족들이 먹던 점심을 대치동 주부들도 똑같이 먹을 수 있게 됐다. 팀호완 관계자는 "월 매출에서 배달주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라며 "상당수의 주문이 삼성동이 아닌 압구정동, 대치동 주택가에서 들어온다”고 말했다.

배달은 특정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선릉역 인근의 한 주문자는 1층에 ‘콤파스커피’가 있음에도 굳이 300m 떨어진 ‘빽다방’의 아메리카노를 배달 주문했다. 배달 덕분에 거리가 다소 멀어도 선호하는 브랜드의 커피를 주문해 마실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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