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일자리 없애기' 경쟁하는 여야

입력 2020-09-21 17:53   수정 2021-04-20 17:23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고, 1호 정책(첫 업무지시)으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대부분 ‘일자리 없애기’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이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전면 도입한 결과 노동시장의 경직성만 높아져 일자리 창출효과는 보지 못했다.

잇따른 정책 실패에도 정부와 여당은 꿋꿋하다. 거여(巨與)의 규제 본능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부작용이나 후유증 우려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반발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한달퇴직금법),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삼성생명법) 등의 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국회 과반수 의석에 이어 18개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확보했으니 법안 몇 개쯤 통과시키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경제민주화 신봉자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나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밀어줄 태세니, 약했던 명분까지 거저 얻은 형국이다. 여야 정치권의 표심 경쟁 속에 죽어나는 건 기업이고, 없어지는 건 투자와 일자리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한달퇴직금법은 ‘계속근로기간이 1개월 이상인 근로자에게 퇴직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퇴직금 지급 대상이다.

개정안이 도입되면 연간 퇴직급여 수급자가 628만2000명 늘어나고, 기업 퇴직급여 추가 부담만 6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다봤다. 1년 미만 근로자와 초단기근로자들이 대부분 300인 미만 사업장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영세사업장과 소상공인 경영부담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서 봤듯이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리고 수많은 일자리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보유 규제 강화(상장사 30%, 비상장사 50%)는 기업들에 많은 비용 부담을 떠안기게 된다. 투자와 고용에 쏟아부어야 할 자금이 자회사 지분 매입에 쓰일 수밖에 없다. 개정안이 통과된 뒤 삼성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16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약 30조9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단체들에 따르면 24만4000여 명을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면 수출과 국내 고용의 대들보인 삼성그룹은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차별금지법도 고용시장에 만만찮은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사용자(기업)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기존 파견근로계약 근로자나 근로계약 인력(아르바이트 등)을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 대해서도 사내근로자와 임금, 근로조건 등에서 차별 대우를 하면 민사책임은 물론 형사처벌(벌금형)까지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참사’가 벌어지는 와중에 국회는 일자리를 없애고 고용 창출의 원천인 기업을 옥죄는 규제 법안만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 백신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경제, 기업을 위한 백신이다. 규제 완화라는 백신은 개발이 어렵거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여당과 정책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기업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안팎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반도체 배터리 수소연료전기차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은 내부에 있다. ‘코로나보다 규제가 더 무섭다’는 기업인들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이제 그만 기업을 내버려둘 때도 됐다. 정부·여당과 기업 간 강력한 3단계 거리두기가 시급하다.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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