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인구를 억제해야 할까

입력 2020-09-28 09:01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냥 인구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이런 문제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그는 성공회 성직자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가 1798년 《인구론》을 발표하기 직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전쟁 작황부진 식량 폭동 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18세기 말에 산업혁명으로 팽배하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은 《인구론》을 발표했다.


맬서스는 인간의 강한 성욕 때문에 인구 증가를 막기 어렵다고 보았다. 인구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 생산은 천천히 증가해 파국을 맞는다는 것이다. 식량이 늘면 인구가 늘어 노동력이 증가하지만 곧 인구 포화로 임금이 떨어지고 식량이 비싸진다. 임금이 싸지면 지주들은 농업 노동자를 더 고용하게 되어 다시 식량 생산이 늘지만 ‘먹는 입’이 더 빨리 늘어 또 식량 부족에 직면한다. 이런 악순환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맬서스 함정’이라고 한다. 생산성 향상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소득이 정체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맬서스 함정
맬서스 함정은 생산을 토지에 의존했던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리 있는 분석이었다. 14세기 중반에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을 때 임금이 크게 오른 것이나, 16세기 이후에 인구가 늘면서 임금이 떨어진 것과 같은 사례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구가 곧 부로 간주되던 농경사회에서는 다산이 미덕이었다. 경제 성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성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구 증가에 의한 것이었을 뿐 지속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맬서스는 인류가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폭발을 방치할 경우 전쟁 기근 전염병 등 잔혹한 ‘적극적 예방책’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맬서스는 인구를 늘릴 여지가 있는 정책에 반대했다. 예컨대 빈민 구제 정책이 결혼과 출산을 촉진하고, 곡물 수입 자유화는 값싼 식량을 공급해 인구를 늘리므로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론》을 접한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이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이라고 평했고, 카를 마르크스가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경제학’이라고 비판할 만도 했다.
녹색혁명과 인구절벽
맬서스는 성직자 출신이면서 이런 망언을 쏟아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해 ‘적극적 예방책’이 작동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빈민과 노동자이므로 극약 처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맬서스의 본심이었다. 그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실제로 자녀 8명 이상인 가정에 주던 다자녀 장려금을 폐지했다. 그가 사망한 지 10년 뒤 아일랜드 인구의 4분의 1이 감소하는 대기근이 벌어지자, 그를 선지자로 재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맬서스의 예언은 틀렸다. 식량 생산은 그의 예상보다 빠르게 늘었다. 19세기 이후에 품종 개량, 비료 및 농기계 발명, 윤작 등의 녹색혁명과 20세기 농업의 산업화로 식량 공급은 인류를 부양하고도 남을 정도다. 반대로 인구가 기하급수로 폭발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인구는 크게 늘었다. 1600년 5억 명에서 1800년 10억 명, 1920년 20억 명, 1930년 30억 명, 2018년에는 약 73억 명이 되었다. 아직도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서는 ‘인구 폭탄’을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나라가 만혼과 결혼 기피로 오히려 저출산을 걱정한다. 인구 폭탄이 아니라 ‘인구 절벽’이다. 이렇게 상황이 변한 것은 19세기 말에 피임약이 발명되고, 20세기 여성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자신이 접한 몇 가지 사례로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특히 25년마다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근거로 미국의 예를 든 것은 통계를 잘못 해석한 탓이다. 그 시대의 미국 인구 급증은 이민에 기인한다.
오늘날 노동자, 17세기 귀족보다 윤택
인류가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난 결정적 요인은 18세기 중반 일어난 산업혁명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을 이룬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의 70여 년 동안 영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혁명’인 것은 인류가 비로소 축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1인당 소득 수준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맬서스 함정에 갇혀 수천 년을 횡보한다. 그러나 1750년을 기점으로 1인당 소득은 로켓이 발진하듯 비약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모양새다. 이를 ‘대분기(Great Divergence)’라고 한다. 대분기는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 선진국 노동자들은 17세기 베르사유궁전의 프랑스 귀족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린다. 산업혁명은 산업은 물론 농업, 상업, 과학기술 등이 동반 성장하며 전반적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서양은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인도 등의 동양을 앞지르게 되었다.

맬서스의 가설은 오류로 판명 났지만, 그의 주장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도 맬서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다윈은 식량과 성적 욕구가 인간 행동을 좌우한다는 맬서스의 전제를 동식물의 적자생존에 확대 적용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맬서스의 가설이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폴 로뱅, 옥타브 미르보 등에 의해 신맬서스주의로 계승되었다. 이들은 식량을 포함해 한정된 자원에 맞춰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인구폭발’과 마찬가지로 ‘인구절벽’도 세계를 위협한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② 산업혁명이 인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이유는 왜일까.

③ 최근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산성 향상을 넘어 인간 노동력 자체를 대체하리라는 전망도 있는데, 앞으로 인구 전망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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