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의 역설…경쟁 사라지자 사교육 누린 상위권만 혜택

입력 2020-10-05 17:42   수정 2020-10-06 02:23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인 이모군(17)은 최근 학업을 반쯤 포기한 상태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한 뒤 성적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또래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니지만 작은 가게를 하는 이군의 부모님에게는 학원비가 큰 부담이었다. 이군은 “학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대비반까지 운영하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혼자 공부해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이군의 사례는 공교육이 붕괴되며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사교육이 맹위를 떨칠수록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교육 붕괴가 평준화 일변도의 정부 교육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입시경쟁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겠다는 평준화 정책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이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교육 사다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향평준 몰고 온 평준화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고소득층 자녀는 사교육으로 보충하지만 저소득층 자녀는 그게 안 된다”며 “고교평준화로 부모 소득에 따른 학력 격차가 더 커지고 있으며 이 같은 교육 양극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평준화 정책은 1969년 중학교 입시 폐지 정책부터 시작됐다. 이후 1974년 일반고의 입시를 학군제와 과정별 지원, 추첨 배정을 기반으로 하는 고교추첨입학제 정책이 서울, 부산 지역부터 시행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평준화교육은 과도한 입시 경쟁을 막고 지역·학교 간 교육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2000년을 전후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등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며 공교육에서는 최소한의 교과 교육만 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를 폐지하는 데까지 발전됐다.

이 같은 평준화 정책은 학업 성취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분야 성적은 556점으로, 2006년 참가국 중 1위를 기록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8년엔 514점, 순위로는 6~11위까지 내려갔다. 이 같은 학업성취도 하락은 저소득층 등 하위계층 학생들에게 특히 불이익을 주고 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집안 배경에 따른 학업성취도 차이가 크다”며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공교육, 사교육만 득세
계층 간 사교육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양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소득 1분위와 5분위의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2001년만 해도 7.9배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8년에는 11.2배까지 벌어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사교육 격차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수시 전형에서 요구하는 것이 많고 복잡해 입시 컨설팅 등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정보 습득 및 준비에 유리한 고소득층 자녀가 득을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교육이 평준화의 틀을 벗어나 실력 양성이라는 교육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6년에 불과한 중등교육을 통해 취약계층 청년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만큼 다양화되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출신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평준화 정책으로 한국 교육 수준은 하향도 아니라 자유낙하하고 있다”며 “기초학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졸업하는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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