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력 없고 예외도 많아…나랏빚 폭증 못 막는 '맹탕 재정준칙'

입력 2020-10-05 17:44   수정 2020-10-06 02:19


정부가 5일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60%)과 통합재정수지 비율(-3%)을 함께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재정건전화 대책’만 마련하면 재정준칙을 일시적으로 어겨도 되고 대규모 재해 및 경제위기 때는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는 예외규정을 뒀다. 시행 시기도 문재인 정부 임기 이후인 2025년으로 미뤘다. 실효성이 없는 ‘맹탕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현 정부의 확장재정에 면죄부를 주는 ‘면피용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5년부터 준칙 적용
정부는 재정준칙 시행시기를 2025회계연도로 못 박았다. 2025년 예산을 짜는 2024년 하반기부터 재정준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네 차례 추경 등 적극적 재정조치를 감안해 유예기간을 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 정권의 임기를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임기인 2022년까지는 자유롭게 재정을 쓰도록 하고 차기 정부부터 재정준칙 준수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발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4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8.6%로 전망된다. 국가채무 비율만 놓고 보면 재정준칙 시행 시점인 2025년엔 1.4%포인트 정도의 확장재정 여력만 남는다.

또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비율 중 하나만 지켜도 되는 ‘혼합형 준칙’을 마련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예를 들어 국가채무 비율을 50%로 유지하면 통합재정수지 비율이 -3.5%여도 재정준칙을 지킨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그간 재정건전성 지표로 삼아온 관리재정수지 대신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사용한 점 역시 논란거리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의 수지를 제외한 수치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6.1%인 데 비해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4.4%로 양호한 편이다. 정부는 국제기준에 맞춰 통합재정수지를 관리 지표로 선택했다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지표를 취사선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엄격한 재정운용을 피하기 위해 재정 지표로서 기능을 못하는 통합재정수지를 택한 것 같다”며 “세계에서 유일한 ‘혼합형 준칙’을 쓴 것도 일종의 꼼수”라고 했다.
정부 입맛 따라 바꿀 수도 있어
무엇보다 재정준칙의 구체적 수치와 계산식을 헌법 및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한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시행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개정할 수 있어 정부가 필요에 따라 목표 수치를 손쉽게 바꿀 수 있다. 환경 변화를 고려해 5년마다 수치를 재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맹탕 준칙’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재정부담 수반 법률안을 제출할 때 구체적 재원조달 방안을 첨부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구속력이 없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준칙 위반을 막을 방법도 없다. 정부는 재정준칙 한도를 어기면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하도록 정했지만 일단 한도 초과를 허용하고, 사후약방문 식으로 대책을 세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산 편성단계부터 준칙에 구속력을 부여하고 위반하면 처벌 조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이 오면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도 뒀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재정학회장)는 “시행령에 여러 예외를 두고 재정준칙 한도를 정하면 결국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확실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설/강진규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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