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최후 승자' 된 호모사피엔스…비결은 탐험욕구·길찾기 능력

입력 2020-10-15 17:47   수정 2020-10-16 02:55

“호모사피엔스는 35만 년 전에서 15만 년 전 사이에 진화를 거치면서 탐험 욕구와 길 찾기 기질이 발달하여 다른 인류와 차별화되었다. 소규모 가족 단위로 살며 먹을 것과 잘 곳을 찾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던 선사시대에, 자원이 있는 곳과 포식자의 동향에 관하여 다른 집단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면 진화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뉴사이언티스트’ 수석에디터, 영국왕립학회 수석연구원을 지낸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의 신간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초기 인류 출현 당시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종족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이유로 ‘길 찾기 능력’을 꼽는다. 우리 조상들이 식량의 위치를 알아내고 적을 파악하면서 발달시킨 길 찾기 능력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선사시대 호모사피엔스가 지도나 나침반 없이 장거리 탐험을 했던 방식의 힌트를 각 지역 원주민들이 붙인 지명에서 찾는다. 북극 지역에 사는 이누이트족이 대표적인 예다. 북극은 외부인이 보기에는 특징 없고 단조로운 지역이다. 하지만 이누이트족은 ‘엉덩이처럼 생긴 두 섬’이란 뜻의 눌루야크, ‘바닥이 밝은색이어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호수’라는 뜻의 카우마주알루크 등 지형의 특징을 세심하게 묘사한 땅 이름을 지었다.

길 찾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활동이란 점도 강조한다. 저자는 “지도를 이용하든 표지판을 참고하든, 길을 찾는 것은 타인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것은 그곳의 문화에 다가가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특정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거주하는 낯선 사람들과 친밀감을 키울 수 있고, 새로운 우정을 만들며 행동반경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 감각과 공간 지각능력은 인간의 심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길 잃은 사람과 우울증 환자의 심리적 공통점을 언급한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됐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 때문에 주변 풍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등 이성을 상실한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에선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를 인용, 신경과민이나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일수록 인지 지도를 생성하거나 랜드마크 간의 공간적인 관계를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해마의 위치 세포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GPS에 의존해 자신의 힘으로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 현실이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 인지적으로 어려운 일은 GPS를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에 맡기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는다. 또 “GPS는 목적지까지 가는 직선 경로를 알려주긴 하지만 땅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주의하지 않으면 절벽이나 습지를 향해 자신 있게 한 걸음 내딛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길 찾기 능력과 본능을 깨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GPS를 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느 곳에 속할까? 나는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하면 거기에 갈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은 존재와 생존에 관한 원초적인 질문”이라고 강조하며 “길 찾기에 대한 책임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술에 전가할 준비가 되었나”라고 묻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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