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재벌·노동개혁 같이 하자고?

입력 2020-10-15 17:58   수정 2020-10-16 00:16

“국가가 정한 법을 지키면서 이윤을 많이 추구하는 기업인이 가장 애국적인 기업인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인용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그 법이 소유권·경영권을 위협한다면, 기업인이 슘페터가 강조한 기업가 정신으로 이윤을 많이 추구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찬성한다는 김 위원장이 노동법 개정을 꺼냈다. 국민의힘 안에서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과 노동법 개정 연계론이 나오고 있다. 어떤 비대위원은 “재벌개혁은 국민의힘이 앞장설 테니 민주당은 노동개혁에 협조해 달라”고도 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개혁을 위해 재벌개혁을 하자던 게 새누리당(지금의 국민의힘)이었다. 노동개혁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기업 규제만 늘어난 꼴이 되고 말았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똑같은 결과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기업규제 3법은 재벌개혁으로 등치화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정이란 이름으로 공약한 이들 법안의 목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상법개정안은 대주주 지배력을,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은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감시 대상을 늘리고,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주식 보유기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기업들에 수사와 소송의 지옥을 맛 좀 보라는 식이다. 업종·규모에 상관없는 규제요, 기업 경영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소유 없는 자유는 없다. 소유권·경영권 위협이 기업경영의 자유와 기업가 정신을 앗아간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공정과 투명성을 내세운 국가 권력의 무한 팽창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이어져 더 큰 불공정과 불투명성을 초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기업규제 3법이 함부로 다뤄선 안 될 법이라면 노동법 개정은 벌써 했어야 할 법이다. 자본을 위해서가 아니다. 거대한 기술변화 때문이다. 노사관계가 좋다는 독일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인더스트리 4.0에 이어 노동 4.0을 들고나온 데는 노동이 살기 위해서는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내포돼 있다. 국내 기득권 노조들이 ‘노동개혁=해고’라며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공장과 굴뚝이 상징하던 산업화 시대 노동법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집단 실업의 공포감을 높이고 있다.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제로섬 게임에 갇혀 지식이 곧 자본이고 노동인 시대에 맞게 변신하지 않으면 둘 다 공멸할 수밖에 없다. 노사 모두 살길을 찾기 위해서도,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노동법 개정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국판 뉴딜을 놓고 봐도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한국공학한림원 등은 합동 세미나에서 한국판 뉴딜의 성패는 민간 투자에 달렸다고 했다. 소유권·경영권을 위협받으며 투자에 나설 기업은 없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 일자리 창출은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 통제와 구시대 노동법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에 성공했다는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불행히도 한국판 뉴딜에 승부를 걸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법·제도 개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규제 3법으로 소유권·경영권을 위협하고 노동개혁은 입에도 올리지 않는 게 그렇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고 해야 할 것은 안 하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대로 가면 2025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140조원을 투입한다는 한국판 뉴딜은 거대한 실패작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의 모순투성이 정책을 제대로 지적하는 정당이 하나도 없다. 노동법 개정과 연계할 게 있다면 교육개혁이지 기업규제 3법이 아니다. 제1야당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야당의 전멸, 이 시대의 비극이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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