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단(낙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현행법으로는 금지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도 피임 실패 등 원치 않는 임신을 이유로 암암리에 낙태 수술이 이뤄지는 등 사실상 낙태죄가 사문화됐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서 낙태는 한 해 30만 건, 세계적으로는 4500만 건이라는 추정도 있다. 낙태 문제를 바라볼 때 우선 검토해야 할 관점은 ‘생명’의 문제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어느 순간으로 볼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체외 생존설’은 태아가 산모의 모체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시기부터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이다. ‘칠삭둥이’ 등 조기에 엄마의 배 속에서 나와 인큐베이터 등에서 집중치료를 받는 경우로 예전에는 수정 후 28주(6개월) 이상이었지만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20~24주 이상이면 가능하다. 출생설은 10개월의 임신기간을 마치고 태어난 이후부터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으로 대략 37~41주 정도로 규정된다.
기독교가 전파되고 로마에서 공인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기독교의 생명존중 논리가 받아들여져 아버지가 자녀를 죽이는 것이 불법이 됐고 낙태 또한 살인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 등 신학자들이 낙태를 죄악으로 간주했고 이는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넘어 근세, 현대까지도 낙태 반대 전통의 뿌리가 됐다.
낙태가 여성의 자율적 선택이라는 주장은 1960년대에서야 본격화하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1973년 내린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반전의 계기가 됐다. 두 여성 변호사가 제인 로(가명)라는 여성을 대신해 헨리 웨이드 지방검사가 속한 텍사스 주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대법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이 났다. 이후에는 임신 28주(6개월)까지 낙태가 허용됐지만 서양에서도 여전히 찬반 논란은 뜨겁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것은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는 근거에서다. 헌재는 임신 22주 정도까지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그 기간까지는 생명이 아니라고 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개정안에서 자유롭게 낙태를 허용하는 14주는 태아가 사고를 하거나 자아를 인식할 수 없는 기간이라는 국내외 연구가 반영됐다. ‘뇌파설’과 비슷한 입장이다. 또한 일정 요건 하에 낙태가 허용되는 24주는 ‘체외 생존설’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를 이루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② 한국 사회의 발전 정도나 인구 감소 우려, 인간 권리의 보호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한 현재 시점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가운데 어느 쪽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할까.
③ ‘사회경제적 요건’으로 낙태가 허용된다면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유로 아기를 버리거나 양육을 포기 혹은 방관하는 것도 인정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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