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독감보다 무서운 백신(?)

입력 2020-10-21 17:44   수정 2020-10-22 00:14

“아침에 한 가정을 ‘일부러’ 감염시켜 놓고선 저녁이 되면 더는 전염병이 번지지 말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행동인가.”(1721년 8월 7일자 뉴잉글랜드신문)

천연두가 번진 1721년 미국 보스턴에선 천연두 백신(종두)의 대량접종이 처음으로 시행됐다. 난관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의로 멀쩡한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발상에 펄쩍 뛰었다. 접종에 앞장섰던 의사 재브딜 보일스턴은 세간의 공포와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여섯 살짜리 아들과 흑인 노예, 그리고 노예의 두 살배기 아기에게 먼저 주사를 놨다. 안전성이 확인된 뒤에야 247명에 대한 대규모 접종이 시행될 수 있었다.

이처럼 백신 등장 이후 ‘공포’와 ‘거부감’이 줄곧 백신 주위를 배회했다. 국내에서도 한때 ‘안아키(약을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고 불리는 백신 거부 움직임이 화제가 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에선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더 널리 퍼져 있다. 백신 거부가 만연한 탓에 몇 년 전에는 퇴치됐다던 홍역이 다시 유행했을 정도다. 코로나가 번지는 와중에도 독감백신 거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실시된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코로나 백신’이 나오더라도 접종하겠다는 비율이 51%에 불과할 정도로 백신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은 종교적 이유나 개인의 자유권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두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가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보다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할지 모른다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백신에 대한 ‘유서 깊은’ 불안감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인천에서 17세 고등학생이 독감백신 접종 이틀 만에 사망한 데 이어 전북 고창과 대전, 대구, 제주 등지에서 모두 9명의 사망자가 나오면서다. 앞서 백신 상온유통 사태로 백신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진 점이 안 그래도 불안한 데 기름을 부었다.

백신은 인류를 천연두와 소아마비, 콜레라, 뇌염 등 다양한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공신이다. 관리 소홀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방역당국은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독감보다 백신을 더 두려워하는 모순된 상황을 하루속히 근절하지 못하면 코로나 백신이 개발돼도 거부하는 이들이 나올지 모른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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