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설립 취지 무색한 高금리 기안기금

입력 2020-10-22 18:07   수정 2020-10-23 00:10

항공업계 지원을 위해 급히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40조원이 다섯 달 지나도록 안 팔리고 있다. 업계의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일까. 사정은 정반대다. 현금이 바닥나면서 항공사 대부분이 한계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기안기금이 마련되자 고용인원 300명 이상, 차입금 5000억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과 에어부산 등 4개사는 가뭄에 단비처럼 반겼다. 그런데 7%가 넘는 이자율에 발이 묶였다.

지난 5월 28일 기금 출범식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타이밍과 충분성, 고용안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강조했지만 “기금은 특혜가 아니다”는 당연한 얘기를 했다. 그게 기금운용의 족쇄로 작용했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기업의 과잉신청을 막기 위해 시장금리에 맞춰야 한다고 답했다.

기안기금의 설립 취지와는 다른 금융 논리다. 돈 떼일 가능성을 고려해 위험프리미엄을 더한다면 그건 일반대출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차입자의 신용에 따라 이자율을 정하지만 지금은 재난적 상황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노래방, PC방 등엔 1.5%, 그밖에 중소기업엔 1.9%로 긴급대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코로나19 위기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업계에선 완전한 회복시점을 2025년까지 길게 본다. 백신 개발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의 항공업계에선 지금도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우리도 국제노선의 95% 이상을 폐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생각할 게 있다. 업계의 절박함과 생존전략이다. 자구노력을 다해도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개인이건 기업이건 막판에는 사채(私債)도 쓴다. 당장 파산할 위기에선 이자율 정도야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그래서 사채를 끌어 쓰면 임시변통은 되지만 대부분 파산으로 결말이 난다. 고통을 견뎌낼 의지만 있다면, 사채업자를 찾기 전에 생살을 뜯어서라도 버텨내는 자구노력이 답이다. 높은 고정영업비와 낮은 영업마진의 수익구조로 인해 세계 항공업계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4%대다. 높은 이자율 탓에 기안기금을 빌려다 쓰면 당장 위기는 넘기겠지만 또 다른 재무적 위험이 시작된다.

외국의 구제금융은 어떤가? 각국 정부는 올 상반기에만 항공업계에 약 1230억달러(140조원) 규모의 긴급예산을 편성해 대출, 고용지원금, 지급보증 순으로 수혈했다. 산은은 국회 답변에서 독일 루프트한자의 적용금리를 들어 유럽연합(EU) 등 다른 국가들도 시장금리를 적용한다고 했지만, 프랑스 정부가 에어프랑스-KLM에 지원한 40억유로(5조4000억원)의 대출금리가 첫해 연 0.75%로 시작해 3년차까지 연 2.75%라는 사실도 말했어야 했다. 구제금융의 금리는 국가마다 다르다. 항공업계 파산을 많이 경험한 미국의 적용금리는 연 1% 안팎이고 높아야 3%를 넘지 않는다. 만기도 5년 이상 10년까지 길다.

재무적 부실로 매각에 실패한 아시아나항공이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파산 위기에서 이자율에 신경 쓸 것 없던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실이 누적된 기업에 대출한 건 코로나19의 피해기업만 지원한다는 기금 취지에 맞는 것일까?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생존을 위협받지 않았을 항공사들까지 고금리로 대출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고용안정에 돈을 써야 할 시간도 많지 않다. 연말까지 현금이 바닥나는 항공사부터 사실상의 실직이 시작될 것이다. 업계를 구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산은은 연 1%대 금리로 조달한 기금을 갖고 위기에 빠진 항공업계를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오해를 받아선 안 된다. 지금은 기간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 수익성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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