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으로 한글 지킨 조선어학회, 역사책엔 단 한 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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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5 18:22   수정 2020-10-25 18:48

"목숨으로 한글 지킨 조선어학회, 역사책엔 단 한 줄뿐"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였습니다. ‘내 나라의 언어’를 잃지 않으려는 독립운동이었죠. 하지만 교과서엔 ‘조선어학회 사건’이란 단 한 줄로만 나와요. 일반 독자들에게 조선어학회의 활약상을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생각정원)의 저자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59·사진)는 지난 14일 경기 수원 행궁동의 북카페 봄뫼에서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봄뫼는 그가 자신의 호를 따 지난해 11월 차린 곳이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은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모, 한국어 어문규정과 사전 편찬 과정 등이 담긴 책이다. 최현배와 이극로, 이윤재, 정태진 등 조선어학회 주요 인사들의 해방 후 활동에 대해서도 상당 분량 할애됐다.

“우린 지금 한글과 우리말을 공기처럼 당연히 여깁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엔 그게 전혀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어요. 조선어학회는 당연하지 않다 여겨졌던 우리말과 글 사용을 당연한 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결국 그 목표를 이뤘어요. 세계 언어 역사에서도 이런 일은 찾아보기 어렵죠.”

정 대표는 방송인이자 역사학자이자 언어학자다. 개그맨·방송사회자로 활약하다 30대 중반에 한글과 사랑에 빠졌다.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한글운동사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며 경기대, 추계예술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다음은 정 대표와 1문 1답이다.



▷조선어학회를 이처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학술서로는 많이 나왔어요. 조선어학회가 없었다면 한글과 한국어가 지금처럼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한 나라의 언어가 계승되고 발전하려면 자체 문법이 정리되고, 해당 언어의 낱말을 모은 사전이 필수적입니다. 조선어학회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냈죠. 그런데 일반 독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쉽게 전달한 책은 별로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필력이 부족하지만 조선어학회의 업적을 전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어 어문규정이 그렇게 파란만장한 시련을 거쳐 나온 것인 줄 몰랐습니다.

▶“회원들끼리 의견차도 컸고, 무엇보다도 그런 작업을 처음으로 한 것이니까요. 주시경 선생이 근대 국어학의 초석을 놓았다면, 조선어학회는 한글과 한국어를 근대 국어학 체계의 반석 위에 올려놨어요. 사전을 정리하려다 보니 단어를 설명할 문장이 필요했고, 그 문장을 쓰려니 자연히 어문규정이 있어야 했어요.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수감 생활을 하면서도 이 작업을 했습니다. 최현배 선생이 감옥에서 가로쓰기안을 완성하셨던 것처럼요. ”

▷‘해방 이후의 조선어학회’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일제 치하의 조선어학회 이야기만 담으면 뭔가 부족할 것 같았어요. 조선어학회가 미리 정리해 놓은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사전 등이 없었다면 해방되자마자 국어 교과서가 편찬되지 못했을 겁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고 좌우 이념 갈등이 극심해지는 혼란 속에서도 언어 문제는 조선어학회가 해결한 셈이니까요. 조선어학회 주요 인사들은 독립운동가로서, 국어학자로서 사회적 존경을 받고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도 갖고 있었습니다.”

▷해방이 됐기에 곧 한글과 한국어를 다 잘 쓸 수 있게 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기간이 36년이나 됐잖아요.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워낙 강하기도 했고, 그 때 태어난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게 식민지 체제였던 만큼 어느 날 갑자기 한글과 한국어 사용으로 돌아오긴 어려웠습니다. 학생 출석을 부를 때 ‘하이’라고 일본어로 대답했다는 말도 있잖아요. 언어와 겨레의 운명은 하나란 걸 증명하는 것이죠. 언어가 사라지면 그걸 다시 되돌릴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언제부터 이렇게 한글과 한국어 역사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셨습니까.

▶“개그맨 활동을 하면서 방송가에 일본식 표현이 너무 많은 걸 보고 놀랐어요. ‘우라까이(적당히 외형만 바꿔 자신이 만든 것처럼 내놓는 것)’, ‘입봉(일본어 ‘잇본(一本)’에서 유래. PD가 첫 작품을 낸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일본어에선 ‘수습과정을 마치고 일정한 기준에 달한 기생’)’ 같이 말이죠. 1999년 이런 일본식 표현을 모아서 모음집을 만들었어요. 단어의 유래, 우리말 표현도 함께 묶었어요. 뭔가 바뀌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건 제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 모음집은 어떻게 됐나요.

▶“프로듀서나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교재로 쓰였어요.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로 바꿔 쓰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 표현이 이런 뜻이니 잘 외워 두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말이죠.”

▷단순히 ‘한글에 관심이 있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방송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말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어로 방송을 하니 당연했죠.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현실에서 ‘이건 아니다’ 하는 사례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조금씩 더 공부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한글과 한국어의 지금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에서 한글 맞춤법과 한국어 문법 교육이 너무 부족합니다. 우리가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를 배울 때는 문법과 철자법 학습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유독 우리말글을 교육할 땐 그 부분을 소홀히 합니다. 알파벳을 가르치듯 한글 자모음과 초성과 중성, 종성을 가르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우리 스스로 귀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수원=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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