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美·中은 '선택' 아닌 '설득'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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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5 18:06   수정 2020-10-26 00:13

[시론] 美·中은 '선택' 아닌 '설득' 대상이다

미·중 간의 힘겨루기가 한국에 전략적 선택을 유도하는 신냉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당초 경제 영역의 중국 때리기와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업적 삼아 연출한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재선을 위한 정치 자산으로 삼으려던 도널드 트럼프의 구상이 중국의 반발과 북한의 군사력 과시로 인해 순조롭지 않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고위 관료 방문과 무기 판매 승인에 더해 쿼드(미·일·인도·호주의 4개국 안보회의체) 확장 추진,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의 군사 활동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중국 역시 대미전선에 북한 카드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10월 24일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행사에 참석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는 취지의 연설로 냉전적 반미정서를 부추겼다.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에 빠졌던 사실은 철저히 외면했으며,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핵보유국으로 행세하려는 북한에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중국은 한·중 양국이 조율하고 있는 시진핑 방한을 지렛대 삼아 남북한 관계 개선에 조력을 얻고자 하는 한국이 중국 쪽으로 다가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월 1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조건과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장기 운영 및 한·미 연합군사훈련, 방위비 분담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전에 비해 강하고 구체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한국의 입장 변화를 단속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미·중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한국의 입장이 흔들리고 전략 대응 방안의 논리와 일관성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남북관계 개선의 가시적 성과를 내고 한·중 경제관계를 확대하려면 중국이 아쉬운 형편이다. 동시에 북한 핵문제 해결과 안보 및 국제경제 질서에서의 협력을 생각하면 미국과의 정책 협력이 요긴하다. 어느 한편에 설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반대편의 반발을 우려한 나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전략적 ‘선택’의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의 정파 간 정쟁과 진영 논리에 따른 사회 분열 현상은 합리적 대응 전략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 흔들리는 우리의 전략 입지와 일관성을 결여한 정책에 대한 국내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정부는 정책 홍보와 사후 해명에 급급하게 된다. 적대적이며 핵무장을 지향하는 북한의 존재와 이를 국익추구에 활용하고자 하는 미·중의 신냉전 기류 속에서 한국의 대외전략이 냉전의 ‘제로섬 게임’ 틀을 벗어나기 힘겹다.

이제 우리의 대외전략이 냉전의 분절 구조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가치를 앞세워 미·중을 설득함으로써 중심을 잡을 때다. 인권과 자유, 법치, 지속 가능한 평화와 공정한 시장질서, 국제 패권 추구 반대 등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보편가치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미·중 갈등 속에서 보편가치에 입각한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 그들의 편협한 국익 추구를 위한 요구에 흔들림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그들의 요구가 구체화되기 전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후 거부는 정책 부담이 크다.

보편가치와 상충하는 문제가 야기될 때마다 중국이 내세우는 ‘내정’과 ‘핵심 이익’의 논리는 궁색하다. 중국의 진정한 발전을 같이 고민한다는 성숙한 자세로 대중 정책에 공들일 때다. 한·미 현안에 대해서도 미국 우선주의와 국내 정치를 위한 이기적 정책과 보편가치 추구를 위한 공통의 협력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치열한 협상 과정을 통해 일관된 세부 협력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미·중은 선택이 아니라 그들의 국익을 넘어서는 ‘보편가치의 논리’를 앞세워 설득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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