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선택적 지시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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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7 09:43   수정 2020-10-27 10:08

대통령의 선택적 지시 [여기는 논설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전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에 대해 "특별 대책을 서두르라"로 지시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지시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민이 '사망' 한 사건이고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 잇는 '근로자'가 희생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시를 보면서 북한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해수부 공무원이 오버랩됐다.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취했나. 문 대통령은 사건 발생 며칠 뒤 "유족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드린다"는 사과를 하긴했다. 하지만 당연히 따를 것으로 예상했던 철저한 진상 조사와 북한에 대한 엄중한 항의 등은 없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뚜렷한 대책 지시도 없었다. 우리 정부는 대신 북측에 공동조사를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북한에 책임있는 답변과 조치를 요구한 지 하루만에 김정은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국민의 생명은 한사람 한사람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 억울하고 황망하게 사망했다면 당연히 국가는 그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이 북한에 피살된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 대책과 '끝까지 조사'를 지시하지 않을까.

국민 한 사람이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에 대통령의 태도가 이처럼 아리송하니 이후 여권에서는 그의 희생 자체의 의미보다는 '월북설'을 계속 확산시키고 국방부는 스스로 발표했던 시신 소각 사실까지 뒤늦게 뒤집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선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니 매우 잦다. 문 대통령은 노동자의 권리와 지위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근로자의 권리 침해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이스타항공 근로자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상직 의원이 창업주인 회사다. 9개월째 300억원 넘는 임금이 체불되고 600명 넘는 직원들이 해고돼 길바닥에 나 앉았다. 하지만 대통령도 민주당도 이스타 항공 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그렇게 '노동 존중' '근로자'를 외치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이 모든 일이 소위 정권 실세로 불리는 이상직 의원을 의식한 때문이라는 소문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듯하다.

문 대통령의 선택적 지시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검찰 수사다. 대통령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검찰에서 좀 더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방산 비리, 육군 대장의 공관병 갑질, 김학의 전 법무 차관 사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장자연 사건,버닝썬 사건 등에 대해서도 수사 주문을 했다.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특정 사건을 콕 집어 검찰 수사를 주문한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매우 '선택적'인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중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침해가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사건도 있는데다 이전 정권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사건에 대해 유독 수사 지시가 집중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이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윤미향 사건 등 현 정권 인사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지만 '철저한 수사' 등의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통령의 수사 지시는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최고 통치권자의 수사 지시는 그 자체로 수사 개입이라는 오해를 살만하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경찰로서는 대통령의 의중을 알게 모르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수사 방향까지 정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공산이 다분하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임무 역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다. 그런데 그것이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그 때 그 때마다 다른 기준에 의해 '선택적'으로 이뤄진다면 이는 결코 공명정대하다고 볼 수 없다. 점점 많은 국민들이 그런 의구심을 키워나가고 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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