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꿈' 제네시스, 5년 만에 글로벌 명차 반열에

입력 2020-10-29 17:27   수정 2020-11-06 15:40


2015년 11월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1관. 무대 위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사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회장이 공식 행사를 주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날 정 회장은 2009년 9월 6세대 쏘나타 출시 행사 이후 6년 만에 국내 공식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 회장은 “지금 이 시간부로 제네시스는 새로운 브랜드로 탄생하게 됐다”며 “새로운 출발을 뜻하는 제네시스를 앞세워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쌓아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10분 넘게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이유와 비전, 장기계획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자고 강하게 주장했고, 제네시스 브랜드 준비를 사실상 총괄했다”고 전했다.

비밀 ‘고급차 TF’에서 시작된 도전
제네시스 브랜드가 다음달 4일 출범 5주년을 맞는다. 한국 최초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이 회사 명운을 건 도전의 결과물이다. 지난 5년은 제네시스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간이었다. 그 사이 라인업이 갖춰졌고, 제네시스만의 디자인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역사는 2004년 시작됐다. 현대차는 ‘고급차 출시를 위한 태스크포스팀(TF)’이라는 비밀조직을 꾸렸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차량에 뒤지지 않을 고급차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구성됐다. 소재와 설계, 시험, 파워트레인, 디자인 등 회사 내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였다. 첫 결과물은 2008년 출시한 대형세단 제네시스(BH)였다. 현대차그룹 최초로 ‘럭셔리카’를 지향한 차였다. 정 회장 등 경영진은 이 차가 현대차의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창세기’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차명으로 선택했다.

대형 세단 제네시스가 한국과 미국 등에서 자리를 잡자 현대차는 깜짝 발표를 했다. 제네시스를 별도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급차 1~2개를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라인업을 대폭 확장하겠다는 의미였다. 회사 안팎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승부하던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는 건 도박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정 회장은 완고했다. 고급차 브랜드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더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중저가 차량을 많이 판매하는 전략을 고수하면 장기적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회장은 브랜드 출범식에서 “뭐든지 도전해야 변화할 수 있고 바뀌어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며 “제네시스를 통해 반드시 시장 변화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판매량 두 배로 급성장
브랜드 출범 이후 제네시스는 급성장했다. 출범 이듬해인 2016년 국내외 판매량은 5만7451대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0만 대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5년 만에 두 배로 증가한 셈이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등 수입 고급 브랜드를 모두 제칠 것으로 전망된다.

제네시스의 올 1~9월 국내 판매량은 7만7358대를 기록했다. 반면 벤츠와 BMW는 각각 5만3571대, 4만1773대를 파는 데 그쳤다. 지난해까지 제네시스 판매량은 늘 벤츠에 1만 대가량 뒤졌다.

라인업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출범할 당시 제네시스 모델은 대형 세단 2종(G90, G80)밖에 없었다. 제네시스는 2017년 중형 세단 G70를 내놓았다. 올해 초엔 브랜드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80를 출시했다. 연말엔 중형 SUV GV70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제네시스는 ‘신생 브랜드’라는 한계에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품질조사 기관인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2017년부터 4년 연속 프리미엄 브랜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는 내구품질조사(VDS)에서도 렉서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렉서스는 지난해까지 8년 연속 1위를 해 ‘내구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브랜드다. G70가 지난해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등 제네시스 차량들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제네시스는 내년 전기차 모델도 내놓는다. 현대차그룹의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별도 모델(코드명 JW)과 G80 전기차 모델이 모두 나온다. G70 왜건형도 출시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5년이 브랜드 정체성의 자리를 잡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5년은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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