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 국가' 프랑스가 계속 테러 당하는 이유 [심층분석]

입력 2020-10-31 10:00   수정 2021-01-28 00:02


최근 한 달 사이 프랑스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자들의 크고 작은 테러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일이기도 한 29일에는 니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참수 테러로 3명이 목숨을 잃었고, 리옹에선 긴 칼로 무장한 20대 아프간 국적 테러 위험인물이 트램에 올라타려다가 체포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서는 사우디 국적의 4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영사 경비원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2주 전에는 파리 근교의 한 중학교 교사가 무함마드를 풍자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보여줬다가 참수당했고, 지난달엔 샤를리 에브도 옛 사옥 인근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져 흉기에 찔린 2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똘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는 최근 어쩌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집중 타깃이 된 걸까
마크롱 "관용 없어" 분위기 격앙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가치를 지키겠다"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에 칼을 빼 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교사 참수 사건이 발생하자 "문화나 종교 율법이 공화국의 법률보다 우위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프랑스 정부가 급진적이라고 판정한 이슬람 단체들을 더 쉽게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극단주의와 폭력을 조장하는 모스크(이슬람사원)나 조직들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이슬람 주요 단체가 최근 테러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이 원칙대로 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온 데 대해 이슬람 지도자들이 격하게 반응하면서 조성된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게 가디언의 지적이다.

또 전문가들은 한번 테러가 발생하면 비슷한 형태의 후속 테러 공격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직접 개입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나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들은 일련의 테러에 만족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이들 조직은 극단주의 조직의 급속한 진화 속에서 어떻게든 유의미한 조직으로 남을 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 당국자들은 유럽의 극단주의자들이 넓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체계 속에서 보면 느슨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테러 가담에 전달자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라고 르몽드는 전했다. 이 네트워크는 전반적으로 자생적이어서 IS나 알카에다와 조직적 연계는 없다. 개인이나 소그룹이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극단주의자로 변모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예전에 비해 주의가 덜해지긴 했다. 유럽 내 테러로 인한 사망은 지난해 70% 급감했고, 서유럽의 경우 2012년 이후 가장 적었다. 최근 유로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음모는 21건 발생했다. 4건은 실패했고, 14건은 저지됐으며 3건만 시행됐을 뿐이다. 지하디스트 음모는 전년의 24건, 2017년 33건에 비해 감소했다.

사실 이같은 테러 건수는 2015∼2016년의 유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권총과 트럭을 이용한 잇따른 테러 공격으로 수백 명의 희생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규모다. 당시에는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통치하면서 서방을 공격목표로 삼고, 유럽에서 건너온 청년들을 훈련시킬 캠프를 만들 만큼 심각했다. 일련의 네트워크와 프랑스와 시리아를 연결하는 유능한 상급 전투원이 존재하는 와중에 서유럽 보안기관의 무능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극단주의 테러 공격이 급증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지만, 일부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르몽드의 분석이다. 특히 프랑스에선 지난해 지하디스트 테러로 인한 체포가 유럽의 절반 수준인 200건 이뤄졌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8000명이 극단주의자로 변모할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중학교 교사의 참수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소셜미디어의 치명적 역할, 2012∼2017년 체포됐던 극단주의자들의 석방이 임박한 점 등은 추가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니스 흉기 테러 용의자는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온 21세 청년이다. 중학교 교사 참수 용의자와 샤를리 에브도 옛 사옥 인근 흉기 난동 용의자도 각각 체첸과 파키스탄 출신의 18세 이민자였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슈자 나와즈 연구원은 "파키스탄과 같은 이민자들의 모국에서는 이슬람교 율법학자와 포퓰리스트 정부의 영향으로 이슬람화와 반서구주의가 심화하고 있는 반면, 교육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민자들의 종착지가 되는 서구 국가에서는 이슬람 이민자들의 게토화가 심화해, 이민자들이 방어기제로 종교에 더 심취하게 되면서 폭력을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통해 극단주의자로 변모
이런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조직이 최근 프랑스 내 기독교 교회를 공격하라고 선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방과 이슬람권 국가들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니스 성당에서 발생한 참수 테러의 배후와 연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알카에다의 이상 동향을 지난 주말에 입수하고 전국 경찰에 공문을 보내 경계하도록 했다. 내무부가 경찰에 보낸 공문에는 프랑스 내에서 개개인이 각자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수행하라는 알카에다 연계 조직의 지령이 담겼다.

알카에다는 성당을 비롯한 기독교 교회를 표적으로 삼으라면서 차량으로 군중에 돌진하거나 칼을 사용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선동은 이날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참수 테러 때문에 주목된다.

튀니지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그라임 아우사위(21)는 이날 오전 성당에 들어가 칼을 휘둘러 3명을 살해했다. 프랑스 대테러 검찰은 아우사위가 코란을 지녔다는 점,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아랍어를 범행 후 계속 외쳤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내무부는 알카에다의 이 같은 선동이 이슬람에 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통합정책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극단주의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테러단체와의 연계성을 수사하고 있다. 니스 테러의 배후를 주장한 단체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서방 국가에서 발생한 테러는 본부의 지령을 받은 조직원이 직접 자행한 경우도 있었으나 극단주의에 심취한 추종자가 개별적으로 저지른 자생테러가 많았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거점을 잃고 패퇴한 IS가 점조직 형태로 변화하고, 나아가 극단주의에 경도한 '외로운 늑대'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테러를 선동하는 데 더 큰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왔다.

이슬람권이 집단으로 반발하면서 갈등은 더 악화하는 모양새다. 일부 이슬람권 지도자들은 프랑스가 이슬람 자체를 모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동과 아시아 이슬람권에서는 프랑스를 규탄하는 시위뿐만 아니라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까지 번지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은 종교갈등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적극적으로 악용해 왔다. 과거 IS도 사회불만을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변질시켜 극단주의 추종자들을 확보하려고 기독교 신자나 시설에 대한 테러를 계획적으로 선동한 바 있다.


이처럼 테러 행위가 잇따르는 것에 대해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테러들은 사실 이슬람 종교와는 상관 없으며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슬람인들을 선동해 동참하게 하려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참수당한 교사는 프랑스의 역사, 즉 정체성을 가르치는 직업이었는데 이를 공격함으로써 공포정치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관용 등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큰 원칙엔 변함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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