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 부국증권 사장 "파격인사로 조직 쇄신…올해 사상 최대 실적 낼 것"

입력 2020-11-03 16:37   수정 2020-11-04 01:15


부국증권은 올해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 우려를 불식시키며 상반기에만 매출 4950억원에 영업이익 352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359억원이었는데 반기 만에 연간 수치에 근접했다. 지난 3분기 역시 호실적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현철 부국증권 사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하고 처음으로 한 해 전체를 책임지면서 이뤄낸 성과다. 1954년 설립된 부국증권은 올해 창립 67년으로 국내 증권사 중 세 번째로 오래됐다. 오랜 역사 속에서도 단단히 살아남은 만큼 사업 스타일과 기업 분위기는 안정적이면서도 보수적인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사원에서 대표 자리에 오른 박 사장은 이런 부국증권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익숙함에 젖어 있던 조직에 자극을 줬다. 취임하자마자 관리직원 80% 이상의 보직을 바꾸는 큰 폭의 인사를 했고, 임원은 절반가량이 40대 초·중반일 정도로 젊은 조직을 꾸렸다. 노조의 반발이 일 만큼 기존 부국증권 문화를 생각하면 모험이었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도 “익숙하기보다는 능숙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30대에 지점장…“아침마다 스포츠센터 돌며 인사”
서울 여의도 부국증권 본사에서 만난 박 사장은 181㎝ 키의 눈에 띄는 장골이었다. 스스로를 뼛속까지 영업맨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큰 체구가 영업에서는 콤플렉스가 됐다고 했다. 그는 “체구가 크고 강하게 생기면 상대방이 불안해한다”며 “겸손해 보이기 위해 오랫동안 움츠린 자세로 다니다 보니 목과 어깨, 허리가 항상 아프다”고 말했다.

1986년 부국증권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사내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다. 2012년부터 7년간 자회사인 유리자산운용에서 부사장·사장을 맡았던 것을 제외하면 25년을 부국증권에 몸담았다. 그는 지점 영업부터 시작해 남들보다 이른 나이인 35세에 지점장이 됐다. 경기 파주시 금촌지점이 개설될 때 초대 지점장을 맡았다. 이 지점의 실적을 전체 지점 ‘톱3’에 들 정도로 끌어올려 서울 강남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남지점장은 10년6개월을 맡았는데 이는 최장 기간 지점장 재임 기록이라고 한다.

박 사장에게 영업의 비결을 묻자 “보기와 달리 술은 잘 못 마신다”며 “대신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가 20대 때 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화다. 박 사장은 ‘‘양보다 질’ 있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일 아침과 저녁 피트니스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잘나가던 신촌 우정스포츠센터, 그랜드힐튼호텔 등을 찾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 몸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매일 아침 인사를 하는데 1년 동안은 아무도 안 받아줬습니다. 당시 9시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분도 많았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 달 동안 그곳에 안 나갔습니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였죠. 그러다가 한 달 뒤에 나가니 사람들이 ‘ 그동안 왜 안 나왔냐’며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그때 명함을 줬습니다.” 그는 그때 만난 인연들 덕에 국민주 열풍이 불던 시기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잘하는 걸 더 잘하자”
박 사장은 부국증권 지점영업 상무로 근무하던 중 오너인 김중건 회장의 특명을 받아 2012년 자회사인 유리자산운용 부사장 겸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자리를 옮긴다. 유리자산운용은 당시 펀드 설정액이 2조3000억원으로 쪼그라드는 등 성장이 정체되던 시기였다. 그는 부임 1년6개월 만에 설정액을 5조원까지 두 배 이상으로 불리는 성과를 냈다.

그가 생각한 핵심은 ‘잘하는 걸 더 잘하자’였다. 다른 운용사들이 시장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바꿔가며 내놓을 때 유리자산운용은 강점이 있는 인덱스펀드에 더 집중했다. 유리자산운용은 국내에 인덱스펀드 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시절 세워진 대표 패시브 하우스다. 박 사장은 “위기 국면에서 포트폴리오 구성을 고위험·액티브자산에서 패시브자산으로 전환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힘썼다”며 “또 베트남펀드와 글로벌거래소펀드 등을 출시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2016년엔 유리자산운용 사장으로 승진한다. 2년여 뒤 그가 다시 부국증권 사장으로 옮길 땐 유리자산운용의 펀드 설정액이 9조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익숙함보단 능숙함이 중요”
2019년 3월 그는 부국증권 사장으로 선임돼 7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부국증권은 회사 슬로건이 ‘Like a Family’일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시한다. 그러나 박 사장은 이런 분위기가 오래 이어지다 보니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그는 “직원들이 익숙한 업무만 계속하다 보니 타성에 젖어 잠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하나만 잘하기보단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해 능숙함을 갖춘 사람이 결국 회사를 이끌어갈 것이란 생각에 큰 폭의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관리직만 해온 직원을 영업직으로 바꾸고, 영업직원을 관리직으로 보내는 등 파격 조치에 사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용인력이 적은 중소형 증권사가 업무 연속성과 안정성을 깨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그는 또 기존 부서 중심의 조직을 본부 중심의 책임운영 체계로 바꾸고, 40대 임원을 본부장에 적극 발탁하는 등 젊은 조직 만들기에 나섰다. 부국증권은 40여 명의 임원 중 절반가량이 40대 초·중반이다. 이런 노력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으로 돌아왔다.

업계에서 박 사장은 주변 사람을 잘 챙겨 ‘정 많은 의리파’로 통한다. 그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해 그날 만날 상대방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독실한 신자인 부인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1000일 새벽기도를 하겠다고 맘먹은 뒤 4년 동안 딱 6일 빠지고 매일 나갔다. “선수들끼리 비즈니스 만남을 하면 뻔하지 않습니까. 서로 원하는 부분을 얻어내려고 하는 목적이 있는 만남이죠. 예전엔 상대방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까, 내 편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니까 불안함이 사라지고 당당해지더군요.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 내 마음과 기운이 그쪽에도 전해지는 겁니다.”

■ 박현철 부국증권 사장

△1962년 부산 출생
△1986년 부국증권 입사
△2001년 부국증권 서울 강남지점장
△2007년 부국증권 이사
△2010년 부국증권 영업총괄 상무
△2012년 유리자산운용 부사장 겸 최고마케팅책임자(CMO)
△2014년 유리자산운용 대표이사 부사장
△2016년 유리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2019년 부국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9년 한국거래소 사외이사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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