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전 규제에 사후 규제까지 덧대려는…

입력 2020-11-04 17:41   수정 2020-11-05 00:09

1878년 토머스 에디슨은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필라멘트를 개발했지만 이를 감싸줄 유리 용기를 찾지 못했다. 에디슨은 코닝 공장을 찾아가 1년간 전구용 유리를 개발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닝은 TV 브라운관(1947년), LCD 기판(1959년), 광섬유(1970년) 등 혁신 제품을 내놨다.

그러던 다우코닝(코닝의 합작법인)은 1995년 25만 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다우코닝이 최초 개발한 실리콘 소재 보형물(가슴, 무릎 등에 삽입)이 터질 수 있고, 이는 발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다. 이 기업은 42억500만달러의 합의금을 물어내고 1995년 파산신청을 했다. ‘실리콘과 유방 질환 간 인과관계가 없다’는 하버드대 연구진의 발표도 있었지만 손실은 회복하지 못했다. 이른바 ‘실리콘 재판’ 이야기다.

최근 국회에서 도입하려는 ‘집단소송제’ 파장의 한 단면이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행동으로 다수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자 중 일부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다. 법원 판결이 나오면 당사자뿐 아니라 피해자 전체에 효력이 미친다. 다윗의 돌팔매(집단소송)로 골리앗 기업에 맞서겠다는 의도다. 정당한 소비자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집단소송이 활성화된 미국의 사례를 보면, 변호사는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지만 다수 피해자는 수십달러 아니면 회사 쿠폰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쿠폰 합의’로 불리는 이유다. 소송 남발 문제도 심각하다. 소송 제기만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기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전면 도입’마저 이뤄지면, 과잉처벌의 문제까지 나오게 된다. 피해액의 3~5배까지 물어줘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배상금 폭탄’으로도 불린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동시 도입될 경우, 30대 그룹의 예상 소송비용은 최대 15조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를 제한하고, 대기업 감시와 규제를 강화하는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에 관한 논란도 진행 중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의 경영권 침해 우려 등 부작용이 큰 것도 사실이다.

기업에 대한 규제는 사전 규제냐 사후 규제냐의 문제부터 네거티브 규제 또는 포지티브 규제, 규제에 대한 영향평가, 처벌수위, 경쟁국가와의 비교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미국은 사후 규제가 원칙이다. 아마존,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혁신기업이 끊이지 않고 출현해 미래를 선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대신 문제가 생기면 기업이 파산할 정도로 세게 처벌한다. 그 핵심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우리는 사전 규제가 대부분이다. 성문법 체계를 따르는 한국 법령에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한정적, 열거적으로 정의하는 조문이 주를 이룬다. 세상에 없던 사업을 하려면 법 조문에 대한 유권해석이나 특례를 얻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입법에 의한, 소극 행정에 따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다. 맥킨지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벌였다면 13곳은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고 44곳은 일부 조건을 바꿔야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마존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의약품 온라인 배송(약사법 위반), 안경·콘택트 렌즈 판매(의료기사법 위반), 드론 배송 등 불가능한 사업이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전 규제에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전면 도입하면 사후 규제까지 덧대는 격이다. 사후 규제를 도입한다면, 미국처럼 ‘사전 진입장벽 허물기’가 전제돼야 한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기업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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