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기의 달인'이었다

입력 2020-11-05 17:34   수정 2020-11-06 03:19


“당신은 순 구라쟁이다.”

《인간의 흑역사》로 유명한 작가 톰 필립스가 낸 새 책 《진실의 흑역사》의 첫 문장이다. 저자는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는 비영리 팩트체킹 기관인 풀팩트(Full Fact)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당신은 거짓말과 개소리를 일삼고, 세상에 대해 크고 작은 수백 가지 착각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며 유머 넘치는 독설을 날린다.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남들도 다 똑같으니까. 솔직히 나도 똑같다.”

이 책은 진실과 거짓 중 언제나 거짓 쪽으로 흔들리는 인간의 속성을 파헤친다. 저자는 “우리가 옳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극히 제한돼 있지만, 틀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탈진실(post-truth)’이란 단어에 대해선 “우리가 과연 진실의 시대에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허위 사실이 퍼져나가고 결국 굳어지는 이유를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노력 장벽’ ‘정보 공백’ ‘개소리 순환고리’ ‘진실이라 믿고 싶은 마음’ ‘자존심의 덫’ ‘무관심’ ‘상상력 부족’ 등이다. 노력 장벽이란 어떤 사안의 중요도에 비해 그것의 진위 확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가리킨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누군가의 주장이 검증 없이 반복되면 그것이 마치 진실인 양 계속 돌고 돈다. 우리가 뭔가를 참이라고 믿고 싶다면 주장에 맞는 증거만 취하려 한다. 이미 거짓이라 드러나도 틀렸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기 싫어한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저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거짓말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가짜뉴스와 사기꾼에 대한 사례도 풍부하게 소개한다. 프랑스 사기꾼 잔 드 발루아 생레미가 대표적이다. ‘라모트 백작부인’으로 알려진 이 사기꾼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하다고 헛소문을 퍼뜨렸고, 왕비가 엄청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하고 싶어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 밖에 나 노심초사하던 루이 드 로앙 추기경의 귀에 들어갔다. 라모트 백작부인은 매춘부를 왕비로 속여 로앙 추기경과 만나게 했다. 이어 왕비가 목걸이를 할부로 사겠다는 내용의 가짜 계약서를 보석상에게 넘겼다. 이 사건은 모두 사기로 판명됐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미국 역사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사기의 달인’이었다고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신문을 통한 거짓말하기를 매우 좋아했다. 때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때로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그렇게 했다. 프랭클린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단히 차별했고, 그들에 대한 오해를 재생산하고 부풀리면서 생긴 편견에 대해서도 말한다.

집단 망상으로 인한 가짜 뉴스의 해악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중세시대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은 무고한 여성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저자는 이런 사건들의 근본 원인은 인간 본성 때문이라고 짚는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온갖 힘든 일에 부닥칠 때마다 우리 이외의 다른 집단에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들 잘못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거짓에서 진실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면 거짓에 기겁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항상 개소리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거짓과 가짜 뉴스에 맞서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우선 노력 장벽에 맞서야 한다. 학자는 언론인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언론인은 학자와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뭔가 희한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공유하기 전에 단 몇 초만이라도 할애해 출처부터 확인해야 한다. 정보 공백을 메우려면 미발표 보고서, 유료 회원용 사이트 등도 들여다봐야 한다. 좋은 정부가 부족하면 곧바로 나쁜 정보가 흘러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실패하더라도 자포자기해선 안 된다는 믿음이다.

저자는 “가짜 뉴스 담론의 제일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각국 정부가 가짜 뉴스 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는 데 대해 회의적이다. 고개를 들어 세상에 널려 있는 거짓을 직시하라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이다. 위트 넘치는 문체 속에 차가운 칼날이 보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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