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유의 불꽃' 되길 자처한 여성 철학자들

입력 2020-11-05 17:31   수정 2020-11-06 03:23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대중의 두려움과 빈곤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하고 전 세계를 광기의 전쟁으로 이끌었다. 전체주의가 대중들의 일상을 장악했고, 누구도 쉽게 그 광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자유가 먼저 죽은 후에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1933년에서 1943년, 최악의 암흑기에서 인류를 구해낸 것은 철학이었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무너지고 기존 철학 체계가 붕괴하던 이 시기에 네 명의 여성 철학자들이 자유롭고 해방된 사회를 위한 지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9월 출간되자마자 독일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책 《자유의 불꽃(Feuer der Freiheit)》은 이런 문장들로 시작한다.

철학의 세계를 역사 이야기와 버무려 맛깔나게 소개하는 재능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 볼프람 아일렌베르거는 2018년 큰 인기를 얻은 대중철학서 《철학, 마법사의 시대(Zeit der Zauberer)》 후속작으로 《자유의 불꽃》을 선보였다. 《철학, 마법사의 시대》가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자리에 철학의 혁신을 일궈낸 베냐민, 카시러,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 위대한 철학자 4인의 삶을 펼쳐냈다면, 《자유의 불꽃》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시몬느 베이유, 아인 랜드 등 1933년부터 1943년까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의 시기를 살아낸 4명의 여성 철학자를 등장시킨다. 난민, 저항 운동가, 이단아, 작가로서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삶을 살아낸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쟁과 폭력에 맞서 인류를 구해낸 여성 아이콘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위대한 역사의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보부아르는 ‘영원한 여성다움’의 신화를 타파하자는 호소와 여성의 억압에 대한 분석을 담은 《제2의 성》으로 여성 해방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사르트르를 만나 계약 결혼을 시작했고 개인의 선택이 성별과 관계없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집중했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프랑스 출신의 사회운동가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자의 생활과 노동운동에 큰 관심을 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아인 랜드는 러시아 태생 미국 소설가로 이기주의는 선이고 이타주의는 악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책에 소개된 여성 철학자들은 불행한 시대가 만들어낸 전설들이었다. 개인과 사회, 남성과 여성, 성과 젠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생각들을 선보였다. 이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혀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탈린의 레닌그라드에서 할리우드로, 히틀러의 베를린에서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책은 빠른 속도로 장소를 옮겨가며 자유의 불꽃이 되기를 자처했던 4명의 여성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절망과 희망으로 점철된 지난 20세기의 생생한 증언자들을 만날 수 있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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