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노예의 논리 따르는 외교정책

입력 2020-11-08 18:13   수정 2020-11-09 00:16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중국이 한국을 공격할 때 과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가?’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한·미 동맹의 신뢰성을 깎아내리는 발언이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선 적절하지 못한 행태다.

그런 행태는 우리와 중국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조건들을 애써 외면한 데서 나왔다. 그런 조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정학적 조건이다. 중국에 가까운지라, 우리는 늘 그 영향권으로 끌린다. 그런 끌림에 저항하는 우리를 뒤에서 붙잡아주는 것은 동맹국들이다. 지정학적 조건은 바꿀 수 없으므로 중국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우리는 늘 동맹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다음 조건은 이념과 체제의 다름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줄곧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었다. 냉전 시기엔 소비에트 러시아가 전체주의 진영을 이끌었는데, 이제는 중국이 이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중국에 맞서야 한다. 중국의 위세에 눌려 자유주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사악하고 현실적으로 어리석다.

셋째 조건은 중국 정권과 북한 정권이 얽힌 역사다. 북한을 점령하자 스탈린은 북한을 중공군의 후방 기지로 삼았고, 덕분에 만주의 중공군은 정부군의 공격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중공군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중국 정권은 곧바로 중공군 안의 조선족 병사들로 부대를 편성해서 북한으로 보냈고 그들은 대한민국을 침입한 북한군의 주력이 됐다. 국제연합군에 북한군이 괴멸되자, 중국 정권은 대규모 병력으로 북한을 구원했다. 그런 협력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 우리에 대한 북한의 영향도 따라서 커진다.

미국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선 북한군의 증강이 미국과의 교섭에서 상당한 힘이 된다. 우리에 대한 영향력도 물론 커진다. 그래서 중국은 혼자서는 이미 무너졌을 북한 정권이 연명하도록 도움을 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은 결코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세 조건들을 누그러뜨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은 한·미 동맹이다. 바로 뒤에 일본이 있고 먼 유럽도 힘이 되지만, 궁극적 도움을 주는 것은 미국이다. 중국이 점점 강성해지고 노골적으로 위협적 태도를 보이는 지금,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독립성은 스펙트럼이 넓은 개념이다. 상대와 완전히 대등한 관계부터 명목적 독립까지 상태가 다양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종속적으로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과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현실적 답변은 ‘그때 가봐야 안다’이다. 미국이 결정적 순간에 우리를 버리리라는 예단의 근거는 없다. 그런 일에 대해선 누구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그런 냉소적 질문을 하는 것은 미국이 실제로 도우러 오지 않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리라는 사실이다.

1950년 1월 5일 기자회견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대만의 중국 정부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싸운 동맹국을 버린 것이었다. 1주일 뒤엔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대만과 남한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고 선언했다. 윌리엄 노랜드 상원의원의 말대로, 중공과 북한에 각기 대만과 남한을 침공하라는 ‘초대장’을 보낸 것이었다.

그런 초대에 응해, 다섯 달 뒤 북한군은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흘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됐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다섯 달 전에 한 얘기를 되삼킨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됐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세가 세계를 덮었을 때 서방 지식인들은 “죽는 것보다는 공산주의 세력에 항복하는 것이 낫다(Better Red than Dead)”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그럴 듯도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예의 논리다. 그래서 반(反)생명적이다. 현 정권의 외교 정책이 바로 그런 노예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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