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상징' 문자도 병풍…제주의 삶 담았다

입력 2020-11-17 17:32   수정 2020-11-18 02:43


동아시아 민간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자도(文字圖)가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광해군 때였다. 1610년 나주 남평현감 조유한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유정에게 받은 ‘백수도(百壽圖)’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광해군일기에 나온다. 행복과 출세, 장수를 기원하는 복(福)·녹(祿)·수(壽)의 길상문자도는 18세기 들어 대전환을 맞게 된다.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쓴 유교문자도가 대유행했다.

배타성이 강한 제주도의 유교화를 촉진한 것도 문자도였다. 유교문자도 병풍이 양반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토속신앙의 신당과 사찰을 불태우는 종교 탄압으로도 이루지 못했던 유교화가 자연·자발적으로 이뤄진 것.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 상장례, 제사 등 제주도의 민간 대사(大事)에는 유교문자도 병풍이 무대장치처럼 등장했다고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설명한다.

이 같은 제주문자도 병풍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한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의 개관 기획전 ‘제주실경도와 제주문자도’전이다. 단순 소박하지만 분방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번뜩이는 제주문자도 걸작 병풍과 제주 명소를 그린 12폭의 제주실경도 등 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은 제주 출신인 양의숙 관장(74)이 고향에 문을 연 공예 전문 박물관이다. 양 관장은 KBS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을 1995년 첫 방송 때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민속품 전문가다. 서울에서 고미술 전문화랑 예나르를 운영해온 양 관장은 제주반닫이를 비롯한 제주 공예품은 물론 타 지역의 민속공예품까지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기획전인 개관전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26점에 달하는 제주문자도. 대부분 개인소장품이며 지금까지 소개된 적 없는 미공개 걸작들이다. 양 관장은 “제주 민화는 독특한 구성과 미감이 육지의 민화와 구별된다”며 “그중에서도 으뜸은 문자도”라고 강조했다.

문자도는 경기·강원·경상·전라 등 지역별로 특색있게 전개됐지만 제주문자도의 차별성은 유독 뚜렷했다. 육지 문자도의 정형에서 벗어나 남쪽 섬 특유의 감각을 일탈과 파격의 미로 담아냈다. 기존의 문자도가 유교 이념을 선명히 전하는 데 초점을 둔 데 비해 제주문자도는 현실의 삶과 사후세계에 대한 기복적 신앙심까지 간절하게 담았다는 게 양 관장의 설명이다.

제주문자도의 가장 큰 특징은 3단 구성이다. 화면을 상중하로 나눠 중단에는 유교적 덕목을 담은 문자를 그렸다. 상단에는 수생식물과 꽃, 새, 사당을 상징하는 감실을, 하단에는 바닷물고기와 오리 등을 배치했다. 중단의 유교적 덕목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다. 상단의 사당이나 누각은 천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내세에 대한 희구(希求)를 나타내고, 하단의 바다와 물고기, 새 등은 현실의 생업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대표작인 제주실경도는 2015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출품됐던 것을 국내로 들여와 가나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일반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전시의 전반부까지 제주공예박물관에서 공개되다 지난 11일부터 국립제주박물관의 ‘탐라순력도’ 특별전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그 대신 제주공예박물관에서는 영인본을 전시 중이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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