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前 대사 "아버지 조지훈, 6척 장신에 말술…집에선 가계부 쓰셨던 분"

입력 2020-11-17 17:49   수정 2020-11-18 09:48

“아버지께서 쓴 육필 원고를 본 분들은 다 놀랍니다. 서체가 흐트러진 곳이 없어요. 조지훈 시인 하면 떠오르는 6척 장신의 호탕한 애주가란 이미지와 거리가 멀죠?”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지훈 시인(본명 조동탁, 1920~1968년)의 막내인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65·사진)는 지난 16일 고려대 박물관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선친의 육필 원고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조 시인은 ‘승무’ ‘낙화’ 등의 작품을 통해 절제된 시어로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철학을 읊어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박목월·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도 잘 알려졌다. 생전 고려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조 전 대사가 기억하는 조 시인은 꼿꼿하고도 품이 넓으며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는 말과 행동이 항상 일치했다”며 “4·19혁명 당시 쓰신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시는 지금도 고려대 학생과 졸업생들의 가슴에 고대정신을 상징하는 명시로 남아 큰 울림을 주고 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보름 전쯤 박목월 시인과 박두진 시인이 우리집에 왔어요. 셋이 다시 한 번 같이 문집 《청록집》을 또 내자고 하셨죠. 그게 세 분의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부인 김난희 여사와도 금슬이 좋았다. 조 시인이 자신의 호 지훈(芝薰)에서 지초 지(芝)자를 따고, 지란지교(芝蘭之交: 맑고 고귀한 사귐)란 뜻으로 아내의 이름을 난희(蘭姬)로 새로 지었다. 조 전 대사는 “어머니가 올해 아흔아홉인데 몇 년 전까지도 선친의 시를 붓글씨로 옮기는 일을 하셨다”며 “아버지가 생전에 입은 옷은 모두 어머니가 직접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얼마나 꼼꼼하셨는지 몰라요. 가계부도 직접 쓰시고, 집안 곳곳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전부 알고 계셨죠. ”

조 전 대사는 “아버지가 무릎 위에서 나를 안고 볼을 비비던 게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선친이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던 1968년 남긴 마지막 시 ‘병(病)에게’를 인터뷰 도중 들려줬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 할 때면/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작년에 아버지의 시가 영문으로 번역됐을 때도 낭송회 때 이 시를 읽었어요. 지금도 제 마음에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고려대박물관은 조 시인이 《청록집》보다 먼저 엮었지만 출판하지 못한 개인시집 《지훈시초》 육필 원고를 책으로 펴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쁘게 보실 겁니다. 직접 쓰고 엮은 시집이 세상에 나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요.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어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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