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올해 1월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취임식 대신 현장 방문에 나섰다. 강원 홍천군에 있는 딸기 농가를 찾았다. 이 회장은 현장 방문에서 “농업인이 없는 농협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농촌에 산적해 있는 문제의 답을 현장에서 찾기 위해 농업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71년 경기 성남시 낙생농협에 입사하며 농협 경력을 시작했다. 26년간 낙생농협 임직원으로 일한 그는 1998년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세 번 연속 당선됐다. 2008년 세 번의 조합장 임기를 마친 뒤에는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2015년까지 일했다.
2016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패배해 고배를 마셨다. 이 회장은 올해 초 회장 선거에 재차 도전해 경기지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됐다.
이 회장이 내실 경영을 추구하는 것은 8년 동안 감사위원장을 맡으며 농협의 살림살이 전반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예산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낭비되는 부분은 없는지 철저히 들여다보던 경험이 경영 스타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농협 관계자는 “이 회장 취임 이후 비용이 많이 드는 행사는 자제하는 편”이라며 “대신 현장 행보 등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홍천 딸기 농가 외에도 다양한 농업 현장을 찾았다. 지난 5월에는 경기 화성시를 찾아 벼 직파재배 파종 시연회를 열었고 6월엔 충남 부여와 보령에 있는 스마트팜도 잇달아 방문했다. 태풍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도 찾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 현장도 방문했다. 그는 이달 초 찾은 AI 방역 현장에서 “농협의 가용 방역자원을 총동원해 차단 방역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산업 전 부문에 걸쳐 디지털화가 촉진되는 상황에 농업도 발맞춰나가야 한다고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왔다. 지난 7월에는 농협 조직을 개편하면서 유찬형 농협중앙회 부회장 직속으로 디지털혁신부를 신설했다. 기존 기획조정본부 내 연구개발(R&D) 통합 전략국과 농협미래경영연구소의 4차산업혁명추진센터를 통합한 부서다. 인재개발원 소속이던 미래농업지원센터도 디지털농업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꿔 디지털혁신부 밑으로 이동시켰다. 디지털혁신부는 스마트팜 등 스마트 농업 활성화와 농협 사업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회장은 디지털 농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 6월 충남 부여 스마트원예단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농협 구현을 위한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유리온실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비닐하우스형 스마트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청년농부사관학교 4기 입교식에서도 “농업·농촌의 주역이 될 디지털 청년농업인 육성에 더 힘쓰겠다”고 했다.
디지털 농업과 함께 이 회장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유통 혁신이다. 그는 농협의 유통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여인홍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도매조직 통합, 온라인 도소매 도입 등 농산물 유통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농협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유찬형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비상경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고 3월부터 비상경영대책 보고회를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계상황을 맞은 화훼, 친환경 농산물 등 농가를 위해선 지원책을 확대하고 있다. 농협은 화훼농가에 1000억원의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고 농협 차원의 꽃 소비 캠페인도 벌여 10억원어치의 꽃을 구매하기도 했다. 친환경 농산물 농가가 개학 연기로 인한 급식 납품용 수요 급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특별판매전을 기획해 친환경 농산물 판매를 지원했다. 코로나19 자가격리자에게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는 활동도 했다. 태풍 피해를 본 농가를 위해선 긴급 물품을 지원하고 재해보험 사정 시 농민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도록 했다.
농협은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을 위한 농협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지역농협 조합장 중 일부가 대의원으로 선정된 후 대의원회의 투표로 회장을 뽑는 간선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회장은 “회원조합 전체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선 중앙회장 직선제가 필수적”이라며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정한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