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과 손정의가 손을 잡는다면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0-11-21 08:12   수정 2020-11-21 15:59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경영자다. 가장 큰 공통점은 일본과의 깊은 인연이다. 신 회장은 모친과 부인이 일본인이다. 손 회장은 대구 출신 부친을 둔 재일 한국인이다. 그의 이름은 손 마사요시다.

롯데와 소프트뱅크는 한반도 동남쪽 한인(韓人)들의 노마드적인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 회장의 부친인 고(故) 신격호 창업주는 1941년 성공을 위해 도쿄로 밀항해 오늘날의 롯데를 일궜다. 손정의 회장의 부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인 대구를 뒤로 하고 일본 규슈 지방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신동빈과 손정의, 두 거인(巨人)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느냐다. 신 회장이 이끄는 롯데는 한국 기업이다. 신격호 창업주는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에서 거둔 성공의 열매를 고국에 심었다. 1967년 4월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롯데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소프트뱅크는 일본의 간판 기업이다. 손 회장은 도요타와 손잡고 일본의 인공지능(AI), 모빌리티 혁명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경영 스타일도 같은 듯 다르다. 신 회장은 수성(守城)의 책임을 진 2세다. 부친이 일궈 놓은 85개 계열사들을 보존하고, 더 키우는 게 그의 임무다. 손 회장은 경영인이기에 앞서 투자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창업주인 그는 컴퓨터 전문가 출신 답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주요 기업과 산업에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비전펀드는 쿠팡에 약 3조원을 투자했다. 신 회장이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긴 했지만, 그 역시 창업가의 기질을 타고 났다. 신 회장이 롯데를 실질적으로 경영한 이래 롯데그룹은 M&A(인수·합병)를 통해 종합화학그룹으로 거듭났다.

각각 한·일을 대표하는 기업인 롯데와 소프트뱅크는 매출 규모면에서도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 있다. 롯데그룹의 매출은 100조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9조6022억엔으로 환율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한화로 대략 100조원 규모다.

흥미로운 점은 신동빈과 손정의, 두 명의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만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7월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대표 등 재계 총수들을 만났는데 롯데는 초청 명단에서 빠졌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공개된 자리에서 신 회장과 손 회장이 만난 일은 없다. 하지만 두 기업인이 면식도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신 회장은 1955년생이고, 손 회장은 1957년생으로 나이도 비슷하다. 신 회장은 유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롯데그룹을 이끌면서 1년에 몇 차례씩 일본에서 지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올해 역시 3~5월과 8~10월 등 두 차례 일본에 체류했다. 공식적으로 접촉하지 않았을 뿐, 두 기업인 사이엔 접점이 무수히 많다.

신동빈 회장과 손정의 회장에 대해 일별한 것은 두 기업인이 손을 잡을 날이 머지 않아 오지 않을까하는 전망에서다. 표면적으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소프트뱅크가 쿠팡의 최대 투자자이고, 쿠팡과 롯데는 유통산업에서 경쟁자인 한 롯데와 소프트뱅크가 가까워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 회장도
올 3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 1조원의 적자를 내는 쿠팡과는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의 발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쿠팡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자신감일 수 있고, 쿠팡이 벌이는 ‘미치광이 전략’을 따라 하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신 회장이 인터뷰를 한 3월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파장이 아직 가시화되기 직전이었다. 그 후 11월 현재까지 한국의 유통산업은 ‘언택트 소비’로 뒤덮였다. 롯데쇼핑은 올 상반기에 역대 최악의 실적을 거뒀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무려 95% 감소했다.

그 사이 쿠팡은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거래액이 17조원을 넘어섰다. 물류 측면에선 여타 유통 대기업은 물론이고, CJ대한통운 같은 물류가 본업인 기업들조차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쿠팡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급이 다른 적자’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적자라는 의미에서다. 쿠팡의 경영진은 계약 보너스만으로 5000만원을 무조건 지급하며 IT 엔지니어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한때 쿠팡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들은 중국에서도 활발하게 구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유통 대기업을 거느린 중국은 이와 관련한 수많은 IT 엔지니어들을 배출하고 있다. 최근엔 우버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영입하기도 했다. 쿠팡이 연간 쓰는 비용 중 상당 부분이 이 같은 인재 영입에 들어간다.
신 회장이 “쿠팡과 경쟁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쿠팡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출혈 경쟁을 할 수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부분의 계열사가 상장사인 롯데그룹이 쿠팡처럼 조(兆) 단위의 적자를 감수하며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주가 폭락에 따른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할 지도 모른다.

쿠팡 역시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쿠팡을 혁신의 기업으로 봐야할 지 물음표를 붙이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아마존이 엄청난 투자를 해가며 아직 큰 이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쿠팡처럼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보지는 않는다. 쿠팡이 자신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아 정확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쿠팡은 적자를 감수하고 최저가로 물건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충성도 낮은 온라인 쇼핑의 특성상 쿠팡은 언제든 고객 이탈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가장 큰 약점은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쿠팡이 온라인 쇼핑에 전념할 것이란 전제에서다. 쿠팡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달리 ‘온라인 온리’ 회사다. 옴니 채널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반쪽짜리’라는 얘기다.

현재로선 롯데와 쿠팡이 결합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롯데에선 쿠팡 인수를 검토한 적이 있으나 사실상 불가로 결론난 것으로 알려졌다. 10조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다 쿠팡이 매각보다는 나스닥 IPO(기업공개)를 선호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업의 세계에선 언제나 합리적인 결론만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의 결론이 때론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신동빈 회장과 손정의 회장이 손을 잡는 일을 불가능의 영역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단지 롯데쇼핑과 쿠팡의 결합만이 아니라 그 넘어를 생각한다면 좀 더 현실 가능성이 높아진다. 손정의 회장이 과연 한국의 온라인 쇼핑 시장을 평정하기 위해, 다시 말해 이베이코리아와 11번가, 티몬, 위메프 등과 경쟁하기 위해 쿠팡에 3조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을까. 우버의 최대주주이며, 알리바바와 연합군을 형성해 AI와 결합된 모빌리티의 미래를 그리는 인물이 손정의다.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펀드가 비전펀드고, 쿠팡은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쿠팡의 미래에 대해 IT 업계에선 2000여 명에 달하는 IT 개발자 풀(pool)이 쿠팡의 최대 자산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우버에서 CTO를 영입하는 등 쿠팡이 그리는 최종 그림은 온라인 쇼핑을 플랫폼으로 삼은 지능형 모빌리티라고 봐야한다. 무인 자동차 등 지능형 이동수단이 가장 먼저 시행될 영역은 대중 교통이나 배달처럼 경로가 정해진 이동 수단일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집적해 AI가 배송 경로를 학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무인화 배송의 미래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롯데는 5대 그룹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처한다는 측면에서 우등생으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SK그룹에 비하면 유통, 화학, 식품, 호텔&레저 등 비첨단 산업에 치중된 편이다. 어쩌면 신동빈 회장과 손정의 회장이 쿠팡을 연결점 삼아 손을 잡을 날이 올 지, 누가 알겠나.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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