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빛' 오로라로 담아낸 생명의 환희

입력 2020-11-22 17:53   수정 2020-11-23 01:25


연초록빛 소용돌이가 하늘과 땅을 뒤덮었다. 빛의 덩어리가 일렁이며 춤을 춘다. 화면은 녹색과 청색으로 가득하다. 코발트블루, 울트라마린, 프러시안블루, 블루그린 등의 다채로운 청색이 초록의 빛덩어리를 받치고 에워싼다. 신비로운 빛의 향연 아래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연주한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금관악기 등의 아름다운 선율이 생명의 빛 탄생과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하다. ‘오로라 작가’로 유명한 전명자 화백(78)의 작품 ‘오로라를 넘어서’다.

전 화백의 개인전 ‘태양의 황금빛 해바라기들’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찬란하고 생명력 넘치는 해바라기를 화폭 가득 담아낸 해바라기 시리즈 신작들과 오래도록 작업해온 오로라 연작,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담아낸 ‘자연의 조화’ 연작 등 근작 30여 점을 걸었다.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인 전 화백은 일찍부터 프랑스에서 명성을 쌓았다. 홍익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76~1980년 프랑스 파리 그랑드 쇼미르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50대에 다시 파리로 떠났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가족도 서울에 둔 채. 1995년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 졸업과 함께 제31회 칸 국제대상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 교수로도 초빙됐다. 이즈음 그를 매료시킨 것이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만난 오로라였다.

“오로라는 자연이 연출한 최고의 쇼였어요. 천국과 극락을 보여주는 빛 같았죠. 푸른빛과 마주하면서 저 자신이 완벽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오로라에 빠져들었다. 오로라의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화면을 채웠고, 오로라를 찾아 10여 차례에 달하는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오로라 작품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말을 타고 경쾌하게 달리는 사람들, 북유럽 스타일의 뾰족지붕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화면에서 수직으로 촘촘히 드리워진 선은 하프의 현처럼 보인다. 오로라의 신비로운 푸른빛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시공을 초월해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판타지를 선사한다.

‘자연의 조화’ 연작은 오로라의 푸른빛을 주조로 생명의 약동과 환희를 노래한다. 화목한 가족, 사랑스러운 연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하프 등의 연주자들, 회전목마, 마차를 타고 달리는 신혼부부,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뛰어노는 아이들과 동물, 꽃과 나무…. 천지인(天地人)이 합일의 경지에 이른 유토피아 세계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동화적 감성에 젖게 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신작 해바라기 시리즈다. 노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들이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꽃잎들이 춤을 추듯 나풀거리는 해바라기밭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차와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백마가 이끄는 수레를 탄 가족과 연인, 작가의 아바타인 양 그림을 그리는 여인도 있다. 무대만 북국의 오로라에서 남유럽의 해바라기밭으로 옮겼을 뿐 생명의 에너지와 환희가 넘치는 건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에 빠짐없이 악기가 등장하는 건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배운 덕분이다. 베토벤과 쇼팽, 드뷔시를 좋아한다는 전 화백은 “음악은 내 영혼의 안식처여서 화가가 안 됐다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홍익대 재학 시절 고흐에 심취했다는 작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황금빛 물감을 휘저어놓은 듯한 해바라기밭에 매료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느다란 금빛 선으로 그려낸 해바라기는 넘실대고 나부끼며 약동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그의 해바라기 작품 이미지는 내년 초 출시되는 프랑스 고급 샴페인 브랜드 아마존 드 팔머(Amazone de Palmer)의 패키지 디자인에도 사용됐다. 팔순을 바라보는데도 전 화백의 창작열은 뜨겁다. 그는 “내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태양을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지치지 않고 담아내겠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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