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객관식 수능에 논술 문항 추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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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1-23 16:58   수정 2020-11-24 00:12

[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객관식 수능에 논술 문항 추가론 안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고 미래 역량을 타당하게 평가하기 위해 2028년부터 논술형 수능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엔 교육과정평가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과와 발전 방향: 서·논술형 수능 도입 가능성 모색’ 보고서를 공개했다. 논술형 수능 도입 시 과제로 △채점자·채점 기준 공정성과 대규모 채점 부담 △채점 주관 기관 △서·논술형 수능 분리 또는 추가 △절대평가 또는 상대평가 △공교육 준비도 및 사교육 유발 등을 제기했다.

놀라운 점은 중장기 개혁안임에도 기존 객관식 수능을 그대로 놔둔 채 논술문항 추가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기에는 일시적인 객관식·논술식 병존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중장기 방향은 미래 역량을 기르겠다는 원래 취지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1912년 루스벨트가 대선에서 왜 패배했는가.’ 미국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하라는 것이 영국의 수능 역사 기출문제다. ‘생물학적 지식은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길 요구하는가.’ 프랑스 수능 과학 기출문제다. ‘학교 폭력 증가 원인을 분석하는 신문 기사를 영작해 보시오.’ 독일의 수능 영어(외국어) 기출문제다. ‘한국전쟁 발발에 외세는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가.’ 2시간 동안 답안을 써야 하는 국제바칼로레아(IB) 수능 역사 기출문제다.

위 대입시험들은 전 과목에 객관식 문항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기초 점수를 위해서만 쉽게 출제할 뿐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몇 시간 동안 생각을 꺼내는 능력으로 최종 변별한다. 그런데 평가원 보고서는 논술은 구색 갖추기일 뿐 객관식으로 최종 변별을 하자는 구조다.

우리는 왜 시험을 바꿔야 하는지, 공교육을 통해 무슨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지, 기본 원칙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학습은 우리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지만 이젠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그 이상의 생각을 해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객관식 문제보다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논술형 평가가 더 적절하다는 것에 평가원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논술은 일부만 추가하고 최종 변별은 객관식으로 하는 방식으론 100% 논술형 시험을 치르는 글로벌 학생들과 같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객관식 70%, 논술형 30%인 수능을 만든다면, 피겨 선수에게 경기에 대한 문제풀이를 70% 하고 실제 스케이트 연습은 30%만 하라는 격이다.

일본은 수능 개혁을 일시적으로 보류했지만 대학별 본고사가 논술형으로 존재한다. 논술형 본고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해서 수능에까지 논술을 도입하려던 것이므로, 본고사 없이 객관식 수능만 있는 우리와는 공부법이 다르다. 게다가 문부과학성 정책위원이자 국가교육재생실행회의 자문위원인 이쿠코 쓰보야 위원에 따르면, 일본의 평가 개혁은 과정상 시행착오로 인한 일시적 보류일 뿐 집어넣는 지식 평가가 아니라 꺼내는 사고력 평가로 간다는 최종 방향에서 선회한 게 아니다.

2028년은 개혁의 중간 단계다. 글로벌 표준으로 논술 채점을 할 수 있는 채점관 양성을 적어도 10년 이상의 로드맵으로 기획해야 한다. 채점관은 전국의 교사 및 사범대 교수들도 가능하다. 글로벌 표준 논술 채점 기준도 공정성이 검증된 해외 논술형 수능 기준을 참고하면 된다. 주관 기관을 민간에 맡긴 일본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 삼아 공적 기관이 채점의 공정성 및 질 관리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최상위권 변별력을 갖추고 있는 선진 대입시험들이 왜 모두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인지도 살펴보자.

무엇보다 10년 이상의 로드맵에 의해 진행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교육에서 이런 시험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치러지도록 교실 수업을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기형적 사교육 폭발을 막을 수 있다. 학교 내 평가가 여전히 객관식이면서 수능에 논술형 문제를 일부 추가하는 건 학교 교육은 바뀌지 않으면서 사교육만 비대해질 구조라는 걸 정녕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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