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베이스 연광철&피아니스트 김정원, 낭만의 시대를 회고하다

입력 2020-11-26 17:23   수정 2020-11-26 17:54


낭만은 감정이란 토양에서 싹이 튼다. 현재는 낭만의 시대일까. SNS에 자기 감정을 맘껏 표출하지만 서정은 없다. 표현 방식이 다양해졌지만 깊이는 사라져서다. 긴 글 대신 해쉬태그(#)와 이모티콘을 통해 자신을 대변한다. 옛 사람들 정취가 더 깊을 수 있다. 느낀 바를 꾹꾹 눌러담은 노랫말에 마음을 담았다.

베이스 연광철(55)과 피아니스트 김정원(45)이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독일인들이 남긴 18세기 '리트'로 낭만을 되살렸다. 지난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듀오 리사이틀 '향수'를 통해서다.

리트는 독일어로 가곡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 대중 가곡과는 다르다. 예술가곡으로 불리며 서정시에 음악을 입혔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르러 종교 대신 '개인'이 대두되자 꽃을 폈다. 서툴지만 자연스럽고 미숙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장르다.

연광철도 공연에서 절제미를 보여줬다. 과한 기교는 없었다. 비극적인 가사를 부를 때도 서글픈 음색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날 그는 슈베르트의 '송어'와 슈만의 '미르텐' 중 헌정, 브람스의 오월밤을 부를 때 한없이 깊은 울림을 선보였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완숙하게 강약을 조절했다. 중후한 음색과 긴 호흡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부드러운 피아노 반주가 공연 밑간을 했다. 김정원과 연광철은 선율 강약을 매끄럽게 조절하며 합주했다. 연광철 성량이 잦아들면 피아노 선율이 거세졌다. 음량이 커질 때 피아노 현은 여리게 울렸다. 소리가 남긴 잔향은 서로 겹치지 않고 화합했다. 백미는 후고 볼프의 '미켈란젤로 가곡'. '내 지나간 날들을 종종 생각해보네'를 연주할 때 김정원은 웅장하면서도 부드럽게 건반을 쳤다. 오케스트라에 빗댈 소리였다.

공연 말미에는 한국 가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김순애의 '사월의 노래'와 '그대 있음에', 나운영의 '가려나' 등을 연달아 불렀다. 마지막 잔향이 멎자 관객들은 아쉬운 듯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어지는 커튼콜에 연광철과 김정원은 앙코르로 세 곡을 연달아 들려줬다. 슈베르트의 '밤과 꿈', 슈트라우스의 '헌사',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다.


감정을 나타내는 서술어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힘껏 내지르는 고음과 과장된 기교가 가득찬 노래들이 울리는 지금. 연광철 김정원 무대는 귀를 맑은 물로 씻어내는 공연이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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