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처럼 우러나는 첼로音…루트비히 횔셔 '텔레풍켄 녹음 전집'

입력 2020-11-26 17:26   수정 2020-11-27 02:34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따스한 첼로 음색이 더 잘 들어온다. 루트비히 횔셔(1907~1996)의 음반집을 꺼내 듣는다. 특유의 귀족적인 음색에 과장 없는 첼로 연주는 얼어붙은 목석같은 마음도 움직이게 만들 것 같다.

횔셔는 독일 졸링엔에서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보석상이었던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현악 4중주를 연주하길 원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다.

6세에 첼로를 시작한 횔셔는 바이올린 명교사인 브람 엘덜링의 눈에 띄었고, 그는 횔셔를 빌헬름 람핑에게 소개했다. 람핑은 프리드리히 그뤼츠마허(카살스가 발견한 바흐 모음곡 악보를 발간한 첼리스트)와 율리우스 클렌겔 같은 역사적인 첼리스트의 제자였다. 람핑으로부터 왼손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효과적인 운용을 전수받은 횔셔는 자연스럽게 힘을 뺀 연주를 마스터했다. 이후 뮌헨과 라이프치히에서 후고 베커, 율리우스 클렌겔에게 배운 횔셔는 피아노의 거장 엘리 나이,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름 슈트로스와 트리오를 결성해 콘서트와 녹음에서 활약했다.

1936년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 독주자로 데뷔했고 이듬해엔 베를린 음대 교수로 취임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54년부터 1972년까지 슈투트가르트 음대 교수로 재임하며 연주활동을 했다. 동시대음악 연주에도 적극적이어서 볼프 페라리, 피츠너, 헨체, 크셰넥 등 생전에 50여 편의 작품을 초연했다.

횔셔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텔레풍켄 녹음 전집’이 독일 멤브란 레이블에서 나와 있다. 워너뮤직의 라이선스를 얻어 2016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리마스터링한 CD 열 장 구성이지만 LP를 모은 기분이다. 원래의 재킷과 수록곡을 재현했기에 수록 시간은 일반 CD보다 훨씬 짧다.

CD1부터 CD5까지는 1950년대 발매된 10인치 LP를 그대로 옮겼다. 쇼팽, 포레, 레스피기, 드보르자크, 갈리아드, 쿠프랭, 프레스코발디, 드뷔시, 바흐(첼로 모음곡 중 ‘사라방드’ 모음), 발렌티니, 글루크, 슈베르트, 생상스, 라벨의 작품이 소담스럽게 담겼다.

CD6에서 CD8까지는 엘리 나이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이다. 1882년생 엘리 나이의 피아노는 기복이 있지만 평생을 베토벤에 천착한 이답게 25세 연하 첼리스트의 저음을 끌어당긴다. CD9는 쇼팽 소나타(스테레오 버전이 보너스)와 멘델스존 소나타 1번이 한스 알트만의 피아노 반주로 담겼다.

마지막 CD10은 이전에 CD로도 발매됐던 요제프 카일베르트 지휘 함부르크 필과의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이다. 태산 같은 오케스트라와 맞서면서도 부드러운 평정심을 잃지 않는 연주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비르투오시티의 소유자였음에도 횔셔는 기교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았다. 조회수와 댓글수를 늘리려는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깜박이는 모니터를 보다 지친 눈을 비비며 횔셔의 연주를 듣는다. 다기 속의 찻잎이 우러나 번지듯 자연스럽게 듣는 이를 채워주는 그의 명연주가 더욱 와 닿는 요즘이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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