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 서쪽지역 지배…대한해협 사이에 두고 원격통치한 것으로 봐야

입력 2020-11-30 09:00  


5세기 들어 동아지중해에서는 항로 확보 등을 둘러싼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등 해양력 경쟁체제가 만들어졌다. 국가들의 역학관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가야 세력들은 남해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 무역의 이익이 분산되면서 그 위상이 약해졌다. 해양국가인 데다 연맹체제를 벗어나지 못해 효율적인 관리와 조직적인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가야의 핵심 세력은 이 한계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일본 열도로 더욱 진출했다. 남은 세력들 가운데 낙동강 중류의 수로망을 장악한 대가야와 남강·남해안의 항구를 가진 아라가야는 고령의 지산동 32호, 44호분과 함안의 말이산 34호분에서 기마용 장비들이 출토된 것처럼 제철문화를 발전시켰고, 일본 열도와 교류했다.
가야, 양안 국가 체제 선택
이런 복잡한 시대 상황과 왜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이론들이 몇 가지 있다. 임나일본부설(일제강점기 일본학설), 기마민족 정복국가설(에가미 나미오), 부여계 기마인들의 진출설(존 코벨), 일본 열도 내 삼한 분국설(북한의 김석형), 백제 진출설(신채호, 문정창), 전남의 전방후원분으로 인한 새로운 설들이 있다(박천수). 소위 ‘기마민족설’은 4세기 초 한반도 남부의 기마민족이 북규슈로 이동한 후 임나까지 포함해 ‘왜·한 연합왕국’을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왕이 북규슈에 본거지를 두었고,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작전권을 주도한다는 논리이므로 ‘임나일본부설’의 변형이라는 한계가 있다.(천관우)

또 하나가 양안 국가설(윤명철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1996년)이다. 나는 1994년에 배로 지중해와 흑해를 왕복하면서 그리스의 폴리스들,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등이 바다를 사이에 둔 ‘양안(兩岸) 국가’ 또는 식민 모국(母國)과 자국(子國)의 2중 체제였음을 깨달았다. 또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스페인의 ‘지브롤터’는 영국 영토이고, 반대로 아프리카의 ‘세우타’는 스페인 영토라는 사실에도 놀랐다. 그렇다면 가야는 원격통치를 하는 양안 국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열도에 오랫동안 진출하면서 교류했고, 대한해협은 교통과 통신이 가능할 정도로 짧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열도 북부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건국신화 등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가야계의 일본 고대국가 형성
7세기 중반 신흥 국가로 탄생한 일본은 8세기 초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하면서 첫 부분에 복잡한 주체 세력들의 계보와 정통성을 확립하는 창세신화와 건국신화를 기록했다. 즉, 태양여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의 손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삼종신기(거울·칼·곡옥)를 갖고 다카마노하라(하늘)를 떠나 히우가(日向)의 구시후루(觸峰, 久士布流多氣)로 하강한다. 그리고 후손인 짐무(神武)가 동쪽으로 진격하면서 야마토 지역까지 정벌한 후 초대 천황이 된다.

이 신화는 기본 줄거리가 단군신화와 김수로왕 신화처럼 천손강림 신화다. 내용은 물론이고 붉은 천에 쌓여 내려온 지명도 거의 비슷하다(구시후루는 구지봉과 음이 비슷함). 이 때문에 가야계 집단이 일본 열도에 도착해 고대국가를 형성한 과정으로 해석한다. 물론 정치력이나 군사력, 그리고 국제질서를 고려하면 주체는 원가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한 주체는 당시 상황을 모호하게 서술함으로써 종속적이었던 왜 집단을 주체인 것처럼 해석하는 ‘임나일본부설’과 ‘기마민족국가설’을 낳게 만들었다(천관우). 가야계 지명은 지금도 쓰시마(대마도)나 규슈 북부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천손을 모시는 기리시마 신궁 근처에는 ‘가라구니다케(韓國岳)’가 있다. 고대부터 항해자들이 처음 도착하는 규슈 북부에는 ‘가라의 항구’라는 뜻인 ‘가라쓰’가 있는데, 원래는 ‘한진(韓津)’으로 사용했으나 14세기부터 ‘당진(唐津)’으로 바꿔 버렸다.
500년 역사의 기록도 못남긴 가야
6세기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대형 배의 건조술과 원거리 항해술이 발달하고, 신라와 백제에 이어 고구려가 일본 열도에 적극 진출했다. 위상이 약해진 가야연맹은 망국에 가까운 국난을 겪고도 통일에 실패한 채 지탱하다 신라에 각개 격파되고, 남은 대가야도 562년에 멸망했다. 그 결과 한때 남해의 양안을 통치한 해양왕국 가야는 500년 역사를 기록조차 제대로 못 남겼고, 일부만 일본 역사 속에 남겨 두었을 뿐이다.
√ 기억해주세요
5세기 들어 가야 세력은 남해 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 무역의 이익이 분산되면서 그 위상이 약해졌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일본 열도로 더 진출했다. 가야는 원격 통치하는 양안(兩岸) 국가를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열도 북부에서 발견된 유물과 건국신화 등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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