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정치의 역할은 자유 확장"…진리 포기한 노예의 삶 경계

입력 2020-11-30 09:01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불린다.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생전에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의 철학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재평가돼 ‘스피노자의 귀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신과 자연, 정신과 자유, 지성과 국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니체와 프로이트 등에게 영감을 안기며 현대 철학과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대표로 손꼽히는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부른 이유다.

윤리학을 뜻하는 《에티카(Ehtica)》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책이다. 개인, 자유, 진리에 대한 각성이 분출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도 ‘스피노자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진리 포기하면 노예의 삶 못 벗어”
네덜란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피노자의 삶은 힘겹고 파란만장했다. 어떤 구도자보다도 처절하고 비타협적으로 자유와 진리를 좇은 결과였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낸 스피노자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했고, 그의 사상은 금기시되기까지 했다. 모든 학문과 철학이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시대에 개인과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했기 때문이다. “야훼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유대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추방당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은 시대와의 불화에 개의치 않고 비판적 자유정신을 설파한 스피노자를 압박하고 핍박했다.

스피노자의 대표 저작 《에티카》는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에 도달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삶의 윤리’를 제시한다. 그는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주장했다. “완전한 자유가 아니면 굴복”이라며 “나 자신을 쟁취하지 않으면 인생은 실패”라고 강조했다. 굴복을 모르는 태도 덕분에 그에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주의자’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진리에는 단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진리를 위해 그토록 타인들의 비난을 자초하고도 초연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부(富)와 명예를 누릴 기회가 많았지만, 진리를 좇으며 독신의 다락방 하숙생 생활을 감내했다. ‘태양왕’ 루이14세의 ‘평생연금 지급’ 제안도 거절했다. “다음에 나오는 책을 나에게 헌정해 달라”는 지원 조건을 거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헌정해야 한다면, 나는 내 책을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헌정하겠소.” 독일 팔츠의 선제후(選帝侯)인 루트비히의 하이델베르크대 철학과 교수 초청도 사양했다. ‘기독교를 어지럽히는 행동만 피해달라’는 조건이 달리자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유가 결국 제한받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학문에 어떤 제약도 받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스피노자는 현대 국가관과 시민윤리 형성에 기여했다. ‘백성’이 아닌 ‘국민’의 시대가 도래하자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규정할 철학적 토대가 필요했고, 스피노자의 철학이 소환돼 ‘현대적 시민’의 개념을 구체화시켰다. 《에티카》는 자유롭고 이기적인 ‘개인’들의 ‘시민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시민사회란 동정심 대신 존중, 사랑 대신 예의로 이뤄지는 사회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추악하면서도 얼마든지 윤리를 발휘할 수 있다.”

정치는 국가의 통치방식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자유와 능력을 확장시키는 문제라는 게 스피노자의 통찰이다. “권력이 대중의 약점을 이용해 통치자를 숭배하도록 만들고 사람들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며 삶을 무기력하게 하고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는 정치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력의 통치자 숭배 강요에 맞서라”
국가의 진정한 목적은 자유의 보장이며 ‘자유로운 시민’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봤다. 스피노자는 국가를 ‘개인들이 좀 더 자유롭고, 보다 덜 불편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은 상태’로 정의했다. 국가는 개인이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필요할 때만 간섭하는 조정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톨레랑스라 불리는 관용의 개념도 스피노자 철학에서 처음 등장한다. 국가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조화, 균형, 관용을 꼽은 것이다. “내가 행인을 강도질할 수 있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는 나도 당할 수 있다. 살인강도가 가능한 사회보다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회에서 사는 편이 행복할 것이다.”

참혹한 전쟁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평화는 결코 참된 평화일 수 없다고도 했다. 참된 평화는 자유의 공기를 만들어가는 대중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게 스피노자의 설명이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정의를 향한 기질이다.”

《에티카》는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렵고도 드물다”는 말로 끝난다. 스피노자가 목숨처럼 생각한 자유와 진리라는 고귀한 가치를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지.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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